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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성경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정의 합니다. (1:1) 이러한 욥의 탄식은 불신에서 시작되는 불평이 아니라... 믿음에서 시작되는 탄식과도 같은 기도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욥과 같이 많은 시련과 고난이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 고통 앞에서 하나님을 등지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 보며 탄식(기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평에는 응답하지 않으시지만... 탄식하는 성도에게는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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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욥의 탄식을 들은 엘리바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가지고 욥에게 충고합니다. 엘리바스가 주장하는 법칙은 그 내용상 틀지지 않지만... 문제는 그 법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엘리바스의 충고에는 눈물이 없었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지식과 경험에 가두어 놓고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눈물 흘리는 자들과 함께 우시며 복음을 전하셨고... 자기 생각과 경험이 아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셨음을 기억합시다. 우리도 맞은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닌... 이웃과 함께 울고, 내 생각과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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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본문의 욥의 탄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욥이 느끼고 있는 통증을 우리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나병이 무서운 이유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병증입니다. 불에 데어도 날카로운 것에 베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몸을 상하게 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영혼은 영혼의 나병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날마다 데이고 베이며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혼의 통증을 회복해야 합니다. 세상 때문에는 아파하면서도 정작 하나님 때문에는 아파하지 않는 우리의 무감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세상에 데이고 베인 상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된 흔적으로 가득해 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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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합의 탐욕’을 큰 죄로 보시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 탐욕의 경계선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아합의 채소밭입니다. (2절) 내가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는 욕망, 그 탐욕의 경계선이 우리 인생을 아합의 채소밭이 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말씀 앞에 서야 하고... 그 곳에서 나를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내 욕망의 경계선으로 아합의 채소밭이 되는 것이 아닌, 말씀의 경계선으로 나봇의 포도원이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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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아합은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을 가지고 남을 지적하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한(헤렘) 사람인 아람의 왕을 자기 마음대로 살려 주었습니다. (42절) 이는 아이성에서 하나님의 전리품(헤렘)을 훔쳤던 아간의 죄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수7장) 성도는 말씀 앞에서 먼저 자신을 엄격하게 성찰 해야 합니다. 이 엄격함이 우리를 하나님의 것(헤렘)을 훔치는 불순종이 아닌,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순종의 길로 가게 함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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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아람의 군대 앞에 이스라엘은 바람 앞에 촛불과도 같았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아람의 왕들을 상대할 능숙한 장수와 필승의 전략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3절) 그런데 하나님은 능숙한 장수가 아닌 청년들을 세우셨고... (14절) 싸움에 가장 불리한 뜨거운 정오에 싸움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16절) 그리고 세상의 상식과 방법에 맞지 않았던 이 싸움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최선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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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세상은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도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았던... 오히려 더욱 완악하고 완고했던 이세벨과 같습니다. (2절) 그런 세상(이세벨)을 보며 엘리야는 스스로 죽기를 바랄 정도로 실망했고 좌절 했습니다. (4절) 이 모습이 어쩌면 지금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낙망한 엘리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큰 바람과 지진과 불 속이 아닌 세미한(파리한) 소리 가운데 당신이 계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큰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위세를 떨 지라도... 그것은 하나님 없는 속 빈 강정과 같음을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화려하고 재밌어 보이는 세상에 비하면... 볼품 없고 파리해 보이는 예배, 그 말씀과 기도와 찬송 가운데 계심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