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성도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 세상의 가치가 아닌 복음의 가치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합당한 삶은 무엇입니까? 첫째, 산 제물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제물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산 제물입니까? 이는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살라는 의미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인생의 매 순간 그 갈림길에서 세상의 성공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위해 선택하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셋째, 믿음의 분량대로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끝없이 죄악으로 달려가는 생각을 멈추고, 말씀(거룩과 성결)의 울타리 안에서 생각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넷째, 관계 속에서 지체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름이 아닌 다..
더보기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3절)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르시는 그 하나님이 측량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태양의 크기를 계산하고 그 빛의 속도를 계산해 내는 지금도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이제 계산을 멈춥시다. 내 계산이 맞다고 다투지도 맙시다. 우리 모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는 교회가 되어갑시다.
더보기 하나님께 구별되어 드려진 가루가 거룩함으로 떡이 거룩합니다. 또한 뿌리가 거룩함으로 가지가 거룩합니다. (16절)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교회가 된 것은 우리에게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구원의 감동을 잊어버리면, 우리는 시들어 말라버리는 꺽인 가지가 됩니다. (20절) 오늘도 구원의 감동을 기억하며... 꺽인 가지가 아닌, 그리스도의 뿌리에 접붙임한 가지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율법은 그림자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율법이 희미하게 보여 주던 그림자의 실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통해서 희미한 그림자가 아니라... 어떤 어둠 속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사랑과 순종과 충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삶을 통해서 희미한 그림자가 아니라... 어떤 어둠 속에서도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사랑과 순종과 충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율법에 매이고 갇힌 자들이 아닌 복음에 매인 자들입니다. 즉, 우리는 그림자가 아닌 실체이신 예수를 품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속에서 날마다 선명해 져야 합니다. 오늘도 사랑과 순종과 충성으로 희미한 세상 속에서 더욱더 선명해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본문이 말씀하는 우리를 거짓에서 진리로 인도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참된 의는 무엇인가요? 1 아브라함과 율법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아브라함도 율법도 몰랐던 이방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에 이르렀습니다. (9:30-31절) 자기 의(율법의 의)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삶의 기록을 조작할 뿐입니다. 오직 믿음의 의만이 삶을 조작하는 거시 아닌 변화 시킬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2 십자가(믿음의 의)는 구경꾼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9:32-33절) 그것을 품은 예배자에게는 세상의 장애물을 넘는 디딤돌이 됩니다. 십자가의 가르침, 곧 사랑과 희생과 성김과 봉사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오늘도 구경꾼의 자리가 아닌 십자가를 품은 예배자의 자리에 섭시다...
더보기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불평과 원망 그로인한 실패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하나님은 토기장이 이시고, 나는 그가 만드신 그릇임을 아는 것입니다. (21절) 스스로 주인 되려는 자들은 귀하고 천한 것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의 주권(토기장이)을 아는 자들은 그가 쓰시는 것에 주목합니다. 귀하고 천한 것은 우리의 욕심이 낳은 허상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가 쓰실 그릇인가 아닌가 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폐허 속에서 그루터기(남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29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사명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
더보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력하고 살 필요가 없다는 운명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오직 긍휼로 모든 것을 선택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혹은 택하심)은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삶의 갈림길에서 생명과 진리의 길을 선택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정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오직 믿음, 내 공로가 아닌 선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늘도 택함 받은 자의 길을 걸어가시 길 바랍니다.
더보기 주를 믿는 성도가 세상에 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1절) 첫째는 주님이 성도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위하시면(ὑπέρ 휘페르)은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호소하심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힘들고 지칠 때 날 위해 호소하시는 주님을 기억합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5절) 둘째는 주님이 성도를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본 절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입니다. 지금도 세상 속에서는 온갖 이유로 사랑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주님의 사랑을 끊을 이유가 세상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