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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묵상입니다.

 

[사도행전 8:26-40]

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었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 9:23)

 

 

우리를 죽음으로 부르시는 주님

십자가를 지라는 이 말씀은 성공이 보장 된 삶 혹은 갈등이나 고통이 없는 삶으로의 초대가 아닙니다. 사실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살기 위한 죽음임을 우리는 기억해야합니다. 결국 주님은 '살기 위해 죽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죽으라는 주님의 초대는 우리의 육체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육체는 날마다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

 

주님의 초대는 영적으로 죽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욕망을 죽이라는 부르심이고 감정의 유혹을 죽이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 안에 욕망과 정욕이 죽어야 그 속에 주님이 살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빌립을 죽음으로 부르시는 주님

본문에서 주님은 빌립집사를 바로 이 죽음 곧 십자가로 부리고 계십니다. 빌립집사는 누구도 성공을 예상하지 못했 던 사마리아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사람들의 환호와 커저가는 공동체는 아마도 그에게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 많이 사람을 모으고 더 큰 공동체를 만들고픈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라면 아마도 분명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큰 성공을 거두고 이제 그 동안의 고생을 보상 받을 기화를 얻은 빌립에게,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남쪽으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남쪽은 바로 광야의 길이었습니다. (26절)

 

주님은 성공과 유명세 그리고 욕망과 정욕을 죽이고 십자가의 길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빌립은 주님의 죽음으로의 초대에 순종합니다.

 

 

죽어야 산다!

그런데 모든걸 포기하고 내려 놓아야 했던 '십자가(죽음)의 길'에서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만남은 에디오피아(아프리카)에 복음의 길을 여는 만남이 됩니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삽니다.

교회가 죽어야 세상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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