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기적은 '빈들'에서 준비됩니다.(13절) 예수님만 보이는 곳, 그의 음성만 들리는 곳, 그곳이 바로 빈들입니다. 우리 예배가 '빈들'이 되어야 합니다. 기적의 동력은 우리를 불쌍히 여시기는 그 사랑입니다.(14절) 주님과 눈을 마추칠 때 우리는 그 사랑으로 채워집니다. 날마다 예배를 통해 주님과 눈을 맞추고 그 사랑으로 채워져 갑시다. 기적의 수단은 순종입니다. (17절) 빈들(예배)이 준비되고, 주의 사랑이 시작 되어도, 우리의 순종이 없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오병이어의 순종을 드려야 할 차례입니다. 기적은 '감사'로 완성됩니다. 오천명 앞에 오병이어는 너무 작고 초라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감사가 시작 되었을 때 오병이어는 오천..
더보기 두 사람이 있습니다. '디오드레베'와 '데메드리오'입니다.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9-10절) 동역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데메드리오는 사람과 주께 증거를 받은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했고, 사역자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동역을 기뻐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2절) 당신은 어떤 성도입니까? 교회 안에서, 디오드레베가 아닌 데메드리오 가 되시길 소원합니다.
더보기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2절) 이 말씀은 우리의 신앙과 삶이 일치 하는 것이 곧 은혜이고 축복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혼이 잘됨'은 말씀이 내 표정이 되고 언어가 되고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예배때만 사용하는 주문같은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잘됨'은 사랑이 내 모든 삶의 동기가 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세상은 더 사랑 받기 위해 경쟁을 하지만, 성도는 이미 받은 사랑을 나누는 자들입니다. '영혼이 잘됨'은 나그네를 대접함으로 드러납니다. 낮선 나그네를 대접하기 위해 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용기와 결단으로 우리는 하나님 사역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태도가 되고 사랑이 동기가 되며 나그네를 영접하는 용..
더보기 세상은 우리는 미혹합니다. (7절) 미혹(플라노스)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 길을 잃어버지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스스로 삼가'하여 생명과 진리의 길을 선택해야합니다. 길이 없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지나쳐' 주의 말씀에 앞서 가지 말아야 합니다. (9절) 목자 보다 앞서 걸어가는 양은 길을 잃게 될 뿐입니다. 급할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미혹하는 자는 집에 들이지도 인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0절) 이는 그들에게 영향을 받지 말고 타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우리의 색깔과 향기로 세상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끈임없이 우리가 길을 잃어 버리도록 미..
더보기 아가페는 말 그대로 계산하지 않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1절) 이 계산 없는 사랑은 오직 진리(말씀)로만 시작이 됩니다. (2절) 이 사랑이 시작 될 때, 우리 가정과 교회에 은혜의 샘이 터지고... 그 샘이 넘침으로 긍휼의 물줄기가 흐르며... 그 물줄기로 말미암아 가정과 교회는 평강의 땅이 됩니다. (3절) 언제나 말씀을 따라 사랑하는 성도가 됩시다. (6절) 말씀을 따라 사랑하는 그 사람이 바로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샘이 되고 물 줄기가 되어 광야를 옥토로 만들것 입니다.
더보기 성도는 '영생'을 소유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13절) 영생의 본질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입니다. 성도는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14절) 담대함은 무모한 용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고집을 '꺽는 것'입니다. 성도는 형제를 위해 '구하는" (기도) 삶을 살아야 합니다. (16절) 잘못을 지적하고 정죄하기 보다 먼저 그 연약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우상숭배'가 아닌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1절) 내가 '만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우상숭배이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예배 입니다.
더보기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거듭난 자) 입니다. (1절)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낳으신 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 다른 형제와 자매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가정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믿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교회를 비방하는 것은 모두 바리새인의 외식과 같습니다. 그 믿음은 회칠한 무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바른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바른 믿음은 관념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가정과 교회를 향한 사랑의 헌신, 사랑의 실천입니다.
더보기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율법과 계명의 완성은 서로 사랑할 때 이루어 집니다. (12-13절) 천개의 율법과 만개의 업적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휴지조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16절) 이 진리와 고백이 내 주변에서 일어 나는 모든 사건과 현상의 '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