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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인간이 끊임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유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8절) 그러나 그 공호함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리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택 해야 합니다. 악을 더 큰 악으로 이기는 것은 승리 가 아닙니다. 더 큰 실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불공평' 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 몫'(19절)을 주십니다. 이는 각자 받은 시간과 건강과 소유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그런데 우리가 이 '불공평'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불공평하심은 '차별'이 아니라 '선물'(19절)이됩니다. 그리고 그 선물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응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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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자기 발을 삼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가하라'(샤마르)는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1절) 하나님이 그으신 경계표, 그 질서를 빼았기지 말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기는 것이 타락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2절) '함부로'(바할)는 방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떠드는 모든 말은 주의 정의를 방해하는 말입니다. 함부로하는 말은 기도와 찬송이 될 수 없고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서원을 지키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름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서원입니다. '안디록교회', '부모', '직분'의 이름... 이 이름에 걸맞게 사는 것이 서원을 지키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단신의 발을 삼가며,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며,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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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혼자서 걸어가는 인생은 그 모든 수고와 노력이 열매 없는 노고가 될 뿐입니다. (8절) 하나님은 인간을 '혼자'가 아닌 '함께함'으로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함께' 걸어갈 때 좋은(토브) 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9절) 함께 모일 때 가정과 교회에 온기가 채워집니다. (11절) 함께 뭉칠 때, 부러지거나 끊어지지 않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12절)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는 배부르고 둔한 왕이 아니라 가난하여도 지혜로움으로 민첩한 성도입니다. (13절) 움직이지 않는 몸이 둔해 지듯이 움직이지 않는 즉 예배하지 않는 마음도 준해 집니다. 우리는 늙고 둔한 미련한 왕이 아닌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의 모습으로 '함께' 모여야 합니다. '함께' 공동체를 온기로 채우고 견고함으로 세워 '토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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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그림을 그릴 때, 명암을 사용하는 이유는 밝은 곳을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두움이 짙을 수록 빛은 도욱 선명해 집니다. 그래서 성도는 세상의 불의함, 그 어두움에 삼켜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거직 앞에 진실함으로, 부정함 앞에 선함으로 자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행사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위로의 때, 기적의 때, 은혜의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인내와 성실함으로 자기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인내의 길을 걸었던 아브라함이 이삭을 얻었고, 모세가 홍해를 건넜음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인내로, 내게 주신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의 때를 만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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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지구가 은하계의 중심을 도는 우주의 시간으로 인간의 일생을 계산하면... 인간은 찰나에 사자라는 존재에 불과 합니다. 그래서 늘 시간에 쫓기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더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세상의 시계(크로노스)이 아닌 하나님의 시계(카이로스)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의 시간 속에서 100세의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는 것은 불가능 했지만...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가능했습니다. 80세의 모세가 하나님의 시간을 만났을 때, 그는 약속의 땅이라는 비전을 가진 청년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시계만 보며 시간에 쫓겨 몸도 마음도 늙어만 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계를 보며 청년의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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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기 "...모든 것이 헛되도다" (2절) '하벨'(헛됨)은 입김을 의미합니다. 욕망에 사로잡힌 인생은 찰나에 사라지는 입김에 불과합니다. 오직 소망을 붙들 때 인생은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구름이 됩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9절) 욕망을 붙들린 인생은 다람쥐 쳇바퀴처럼 죄의 쳇바퀴에서 제자리 걸음하는 인생이 될뿐입니다. 오직 소망을 붙들때 쳇바퀴에서 내려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15절) 욕망으로 시작하는 지식과 지혜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소망으로 시작된 지혜와 지식 만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제 욕망을 놓을 때입니다. 다시 소망을 붙들어 ... 입김이 아닌 구름이 되시고, 쳇바퀴 도는 삶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인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