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1 초막절은 광야의 여정을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지내는 절기입니다. 아무것도 없었던 광야에서 모든 것을 공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2 또한 초막절은 과일 수확을 감사하는 추수의 절기로 수장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일 년 중 가장 풍요로운 계절에 왜 광야에 초막을 짓고 절기를 지키게 하셨을까요? 광야의 때를 기억하지 못하면... 지금 가지지 못한 것으로 불평만 할 뿐, 이미 주신 은혜에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그리고 초막절(모든 절기)에는 모든 하던 일을 멈추고 성회로 모여야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더 이상 빵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닌, 말씀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 각자의 예배에 이 초막절의 의미가 회복되어 지기를 바랍니다. 광야의 때를..
더보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14절) 모세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제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마지막 교훈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것은 나를 드러내지 말고, 하나님을 드러내야 약속의 땅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후계자로 성령이 충만한 여호수아를 세우시고, (18절) 그로 제사장 앞에, 즉 말씀 앞에 서게 하심으로 그 뜻을 분명히 보이고 계십니다. 내 감정과 생각으로 하나님을 가리지 맙시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고 범사에 말씀 앞에 서서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과 성품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업, 즉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 안의 사역들... 그 약속의 ..
더보기 여는 고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땅은 남자에게 상속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남녀를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슬로브핫의 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관습과 통념을 넘어... 하나님의 부르심에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슬로브핫의 딸들이 그 아버지의 기업을 요구하는 것은... 단지 땅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정복 전쟁에 참여 하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녀들을 자신들의 약함을 핑계삼지 않고 기꺼이 하나님의 전쟁에 참여 하기를 결단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에 하나님은 그녀들에게 기업을 주심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우리도 슬로브핫의 딸들처럼... 나의 기업(땅)을 포기하지 말고. 그 땅을 정복하기 도전합시다. 나의 약함을 핑계 ..
더보기 하나님은 속의 땅을 제비를 뽑아 나누라고 명령하십니다. (56절) 이는 땅(사명과 역할)은 나의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으로 분배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싸우기 전에 땅을 제비 뽑아서 나누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그 땅을 정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교회가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라면, 그곳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아야 정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일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름길, 더 편하고 빠른 길이 아니라 더디고 힘들어도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가는 순종의 길을 가는 성도..
더보기 하나님은 인구 조사, 그 백성의 숫자를 세심으로 그들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 속한 자들임을 선포하십니다. (2절) 두 번째 인구 조사에서 사라진 이름과 남아 있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에 도전했던 악인의 장막에 거한 자들은 사라졌고, 그 장막을 떠난 자들의 이름은 남았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와 권위에 도전했던 고라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그 악인의 장막을 떠나, 하나님의 장막을 선택한 아들들의 이름은 남았습니다. (11절) 그리고 그들은 시편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숫자(장막)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숫자(장막)에 속할 것인지를 말입니다.
더보기 바알브올사건, 우상숭배와 간음으로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염병의 심판으로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춘 것은 바로 비느하스였습니다. (7-8절) 그는 하나님의 진노 중에 여전히 범죄하는 남녀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성경은 비느하스의 행동을 살인이라 말하지 않고... 그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의 질투가 이스라엘 공동체를 살렸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도 질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비느하스가 거룩한 질투심으로 죄를 찌른것처럼... 우리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지 말고 거룩한 질투심으로 거짓과 타락을 찌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한 질투로 죄를 찌를 때... 가정과 일터가 살고,교..
더보기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12절) 무엇이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든 불순종 이었을까요?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불순종 이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반석(문제)을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8절) 즉 반석(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반석(문제)을 지팡이로 내리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자기 감정과 힘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불순종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인생의 반석..
더보기 사망의 부정함은 단지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을 잃어버린 마음, 거룩의 태도를 잃어버린 삶이 사망의 부정함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민13장) 스스 로 메뚜기와 같다고 좌절하던 그 마음 들이 바로 사망의 부정함에 물든 인생이었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꺽고 마음을 죽이는 이 사망의 부정함은 오직 붉은 송아지의 재로 만든 정결의 물로만 씻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 입니다. 오늘도 말씀 가운데 그 십자가의 보혈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꺽여진 마음, 무너진 소망 앞에 좌절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새 소망으로 힘차게 일어나 약속의 땅을 정복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