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Narcissos)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프로이트(Freud)가 이 말을 정신분석학에서 자아의 중요성이 너무 과장되어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에 대해 자기 자신을 근본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인격적 장애의 일종으로 보았다. 목회자의 모든 열정과 사랑은 주님을 향해야 합니다. 청중의 갈체에 비춰진 자기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공동체는 사라지고 스스로 만든 똥통에 빠지고 맙니다.
비바람이 붑니다. 세찬 바람에 손에 든 우산은 더이상 몸을 적시는 비를 막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팔을 잡아 끄는 것 처럼 걸음을 방해할 뿐입니다. 바람을 막아 볼 요량으로 요리조리 우산을 돌려 보았지만 아차하는 순간에 우산은 앙상한 지 몸뚱이를 드러내며 뒤집어져 버립니다. 그런데 우산이 뒤집히고 나니 오히려 맘속이 편해 지며 용감한 생각을 하게됩니다. "오늘 비는 맞아 줘야 겠구나!" ^^ 그리고 비를 맞아보니, 허~ 별거 아닙니다. ^^ 목회를 하다보면, 아니 살다 보면 이렇게 피할 수 없는 비를 만나기도 합니다. 비를 막아 줄 우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뒤집혀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도, 의지했던 돈도, 자신했던 건강도 ... 바로 이때, 비를 맞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뒤..
꽃만 보지 말고, 꽃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람들은 봄날 활짝 핀 꽃을 보며 탄성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 꽃이 피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그리고 그 꽃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수다스럽고 그래서 더 무심하게 들리는 탄성만 내뱉을 뿐이다. 꽃은 지난 겨울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지난 겨울의 이야기를 모른다면 진정 꽃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모르는 것이다. 꽃은 가을의 결실을 이야기하며 화려한 색을 피워내며 향기를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다면 진정 꽃의 아름다움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이 생명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꽃을 온전히 보는 것이다. 누군가 화려한 꽃잎이 달린 가지 하나를 웃으며 꺽어간다. 그에게 꽃은 생명도, 그 생명이 전..
소명은 내가 좋아하거나 하고 싶은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쉽게 소명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저는 요리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 같이 사는 그 누구도 내가 요리 하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 먹을 수 없답니다. 저는 운전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그 누구도 제가 운전하는 차 타기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 멀미가 난답니다. 저는 사진 찍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그 누구도 제 사진기 앞에 서기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나구요? ... 제 사진은 늘 얼꽝각도를 잡아낸다고 합니다. 저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지껏 그 누구도 제게 앵콜를 신청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구요? ... 그야 두 번 듣..
그는 70명의 부하직원 가운데 가장 뛰어난 3명이 입사 후 아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모든 직원 앞에서 그 3명의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2주 안에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나는 자네들을 해고할 걸세!" 마케팅 혁명가로 불리는 세스 고딘(Seth Godin)의 이야기입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그들이 '안락지대(comfort zone)'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임을 지적한 것이지요. 안락지대에 머물지 마십시오.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겠지만, 성취 또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