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보기 믿음의 선한 싸움 / 디모데전서 6:11 – 21 마지막으로 바울은 주께서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그날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참 생명을 취하라고 디모데를 격려합니다. 그렇다면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요? 1 믿음의 선한 싸움의 내용 (11절) 바울은 의와 경건,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의(디카이오수네)’는 죄로부터 구별된 상태를, ‘경건( 유세베이아)’은 바람직한 두려움이라는 뜻으로... 죄악으로부터 구별되어 의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2 믿음의 선한 싸움의 가치 (14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이 곧 경건의 삶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그 싸움의 명분을 설명합니다. 경건의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주신 ..

더보기 하나님은 일기 예보를 하듯, 예상하고 예측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복을 주시겠지, 이러면 손해를 볼지도 몰라...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생각에 가두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욥의 고백처럼,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고...” (13절) 하나님은 예측의 대상이 아닌 믿음의 대상입니다. 오늘도 범사에 실패와 성공을 예상하지 말고... 오직 범사에 믿음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본문이 말씀하는 우리를 거짓에서 진리로 인도하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참된 의는 무엇인가요? 1 아브라함과 율법을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아브라함도 율법도 몰랐던 이방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에 이르렀습니다. (9:30-31절) 자기 의(율법의 의)는 자기 만족을 위해 삶의 기록을 조작할 뿐입니다. 오직 믿음의 의만이 삶을 조작하는 거시 아닌 변화 시킬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2 십자가(믿음의 의)는 구경꾼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9:32-33절) 그것을 품은 예배자에게는 세상의 장애물을 넘는 디딤돌이 됩니다. 십자가의 가르침, 곧 사랑과 희생과 성김과 봉사가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오늘도 구경꾼의 자리가 아닌 십자가를 품은 예배자의 자리에 섭시다...

더보기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5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의 ‘법이 없으므로 죄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마약을 금하는 율법이 없기 때문에 마약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세상이 정한 기준이나 표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와 성품 안에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스스로를 정당화 하지 않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인 이유는,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믿음 안에서 회개하고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그가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고” (19절) 우리는 매사에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에 익숙합니다. 가능성을 계산하고 손익을 따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계산하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더보기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17절) 패역한(디아스트레포) 세대는 삐뚤어진 그래서 능력을 잃어버린 예배를 의미합니다. (신32:5) 주님은 삐뚤어진 세대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는 제자들의 실패, 곧 예배의 실패 때문에 그들을 책망 하고 계십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20절) '작다'는 것은 온전치 않음을 의미합니다. 깨진 씨앗 입니다. 반면 '겨자씨'는 작지만 온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큰 것을 구한다고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라도 주를 향한 완전한 신뢰로 구하는 것이 좋은 믿음입니다. 주는 소리가 크다고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라, 작지만 겨자씨와 같이 온전한 믿음의 소..

저의 네이버 검색 실수로 오늘 말씀 중에 콘센트와 플러그를 바꿔서 비유를 들었습니다. 아무쪼록 목사의 무식함을 '뛰어넘어' 말씀의 은혜를 받는 성도가 됩시다! ㅠㅠ 더보기 하나님의 은혜는 플러그와 같고, 우리의 믿음은 콘센트와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플러그에 연결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재능, 물질, 사람 ...) 은혜의 플러그에 연결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자기부정이 믿음입니다. 스스로 하려는 자기확신을 버리고 자기부정의 믿음으로 은혜 앞으로 나아갑시다. 중풍병자가 평생을 의지하던 침상을 떠나 예수께 나아갔을 때... (6절) 세리가 평생을 안주하던 세관의 자리를 떠나 주를..

더보기 믿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거듭난 자) 입니다. (1절)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는 낳으신 이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에게서 난 다른 형제와 자매를 사랑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는 가정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믿음'이라는 가면을 쓰고 가정을 소홀히 하거나 교회를 비방하는 것은 모두 바리새인의 외식과 같습니다. 그 믿음은 회칠한 무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바른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 바른 믿음은 관념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가정과 교회를 향한 사랑의 헌신, 사랑의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