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이나 청소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종 통제를 통해서 성적 학대를 유지하는 범죄를 그루밍 성폭력이라한다. 이 생소한 단어가 요즘 연일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인천의 어느 교회 목회자가 그가 가르치던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수년간 이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음이 드러나면서 부터이다. 정말 참담하고 끔찍한 그리고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단지 비정상적인 특정 목회자의 병적인 일탈 정도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목회자는 잠재적인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회 조직의 특성상 목회자는 리더이면서 상담자이고 코치이며 치료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정서적으로 종속되기 쉬운 구조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종교..
사람들은 예상 할 수 없는 상황을 불안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예상 가능한 상태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을 만들 때도 검증된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 맛이 다 똑같아 지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문제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의 입맛은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방송 레시피가 정답이라고 믿고 사는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자기가 짠 것을 좋아하는지 단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획일화와 규격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의 개성과 특징, 그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잣대를 가지고 살아 간다.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예상 가능한, 다시..
목사로 산다는 것은 둥글둥글 사는 것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각을 세워 봤자 손해보는 것은 목사란 말을 뼈에 새겨지도록 들어 왔다. 그래서 그렇게 살았던거 같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주인 없는 축구공이 되어있었다. 청팀 백팀이 싸우는 운동장에서 공은 도대체 누구 편인가? 서로 공을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도 위험한 순간이 오면 밖으로 뻥 차버린다. 공이 우리편 발 밑에 있을 때는 환호를 보내지만, 상대편 발 밑에 있는 공은 불편하다. 또 우리편이 골을 넣으면 공을 안고 뛰지만 상대편에게 골을 먹으면 또 다시 뻥 차버린다. 가끔은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려니 스스로 정신 승리를 외쳐 보기도 하지만 결국 더 비참해질 뿐이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잘 못되었다. 성경 어디에도 공처럼 살았던..
균등(equality)과 공정(equity)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사과 열개를 열명이 나눠갖는 사회와 가난한 이에게 더 나누어 주는 사회의 차이입니다.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균등의 원리로는 우리 사회에 세워진 차별의 장벽을 넘을 수 없습니다. 균등이 공정이 될 때, 차별의 불편함을 넘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균등 + ( ) = 공정 균등에 배려를 더할 때 공정이라는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물질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기회를 나누는 배려는 우리 사회를 함께 환호하게 만들것입니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