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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묵상입니다.

 

[사도행전 26:19-32]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일러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 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요즘은 듣기 힘든 '예수쟁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성도를 비하해서 부르는 말이지만... 언제 부터인가 예수쟁이는 '진짜'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반전을 만든 것은 본문의 바울처럼 예수에 미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롱을 칭판으로 바꾼 그 미신 성도? 예수쟁이는 어떤 성도일까요?

 

진리 안에서 '자유'로는 자

재판정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바울의 말 한마디 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황제에게 보내기에는 명확한 죄명이 없어 난처한 총독과 아기 예수의 탄생 때부터 예수라는 이름과 악연으로 얽혀 온 헤롯 가문의 아그립바 왕, 자신들이 죽인 그 예수가 부활하신 메시야 임을 인정할 수 없는 유대인들...

 

결국 재판정의 모든 이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고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인 안위를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죽기를 각오하고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자, 그들이 예수쟁이 입니다.

 

진리 안에서 '초대'하는 자

누군가를 집에라도 초대해 본 경험이 있다면, 초대란 뭔가 가진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것입니다. 먹을 것이든지 볼 것이든지 뭔가 있어야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리한 재판과정에서 2년 가까이 구류된 상태입니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핍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행색을 볼 때 누군가에게 줄 것이라 곤 일(1)도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그가 재판정에 있는 모두를 자기에게로 초대합니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29절)

 

뭣 보여 줄게 있고 줄게 있어서 바울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가 우리에게 주신 복음의 진리였습니다.

 

남이 가진 것 하나도 없어도 우리 안에 진리를 나누기 위해 세상을 초대하는 사람이 예수쟁이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교회는 예수쟁이라는 이름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교회가 예수와 그 말씀에 미쳤을 때 는 세상의 조롱을 칭찬으로 바꾸는 예수쟁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지만, 교회가 성공에 미치고 물질에 미치고 음란에 미진 오늘날 우리는 개독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다시 예수의 이름에, 그 말씀에 미친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대독교가 아닌 예수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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