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의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4:2]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의 1/3을 잠을 자는데 사용합니다. 나머지 2/3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잠자는 시간은 불필요하거나 아까운 시간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깨어있었다고 생각하는 2/3의 시간들 가운데도 실상은 잠들어 있던 시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분명 깨어 있었지만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는 시간들,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던 시간들... 또 간혹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40년을 넘게 살아 왔지만 저 역시 잠을 잤던 13년을 뺀, 깨어 있었던 27년의 기억이 온전치 못하네요. 깨어는 있었지만 실은 잠자고 있었던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항상..
지난 몇 주간 새벽기도회 본문이 출애굽기 였습니다. (저희 교회는 전임목사님 때부터 '생명의 말씀' 큐티 본문을 가지고 새벽기도회 말씀을 나누워 왔습니다.) 25장 이후로 계속 성막에 관한 본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낯설고 다양한 재료들, 복잡한 조립 방법... 머리 속에 성막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히 보이네요. 이 모든게 필요했던 이유 중 한가지는 성막이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성막은 이동식 텐트? 였습니다. 하나님의 따라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 것, 이것이 구약의 성막이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는 정말 중요한 성전의 기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어쩌면 움직이는 이 기능을 상실한 데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벽돌..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책장 속에 잠자던 붓과 벼루를 발견했습니다. 모퉁이가 깨어져 나간 바짝 말라 비트러져 있는 벼루와 오래된 싸리 빗자루처럼 닳고 숫이 다 빠져버린 볼품 없는 붓이었습니다. 붓글씨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해주셨 던 말씀이 신기하게도 생각이 나네요. "서예는 좋은 자세가 가장 중요한 기본이고, 그 자세는 몸의 자세 뿐 아니라 인생의 자세를 말한다" 라는말씀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흘려 들었던 소리였는데, 지금 저에게는 큰 울림을 주는 소리로 새롭게 들리네요. 검은 먹이 얼룩이 되느냐 글씨가 되느냐는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자세를 잃고, 방향을 잃으면 먹은 그저 얼룩이 되버리고 맙니다. 글씨가 되기 위해서는 바른 자세와 방향이 필요합니다. 우리들 인생에도 '먹'이 있습니다. 기쁨과 감사 ..
인생 길을 가다보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대적불가(對敵不可)’의 적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적이 사람일 수도, 환경이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대적 할 수 없습니다. 그 대적불가의 적을 만났을 때에는 기도는 물론 신음소리조차 낼 수 없습니다.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압과 암몬과 세일산 주민의 감당 못할 연합군 앞에서... 여호사밧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결단을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찬양대를 선봉에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창과 칼을 앞세워도 부족할 판국에 찬양대라니 그러나 그 찬양대의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 놀랍게도... 여호와의 복병이 유다의 적을 치기 시작합니다. 세상의 창검 앞에 또 다른 창검을 들고 서서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호와..
1. 돌아오는 주일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한 해의 전반기를 끝내고 후반기를 준비하는 지금, 지치고 고단한 일상 가운데서 잊고 있었던 감사를 깨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흥하거나 쇠하거나 진정한 감사를 잊고 지낼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의 부자는 곳간에 가득 곡식을 쌓아 두었지만 감사의 대상을 찾지 못했습니다. 뭔가 말은 해야 겠는데 말할 대상이 없으니, 자기 영혼에다가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니라" (눅12:19) 맥추감사주일이 내 일상의 모든 감사를 받으실 하나님께 다시 주목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 감사주일과 관련해서 요즘 많은 성도들이 헌금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