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신앙과 외식과 예배 / 마가복음 12:35-44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35-37절) 주님은 당신의 말씀과 사역이 다윗의 혈통과 이스라엘이라는 지역에 국한되지 않음을 선포하십니다. 참 신앙은 주의 말씀처럼 우리끼리라는 관계와 지역을 넘어 땅 끝까지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40절) 외식(프로파시스)은 ‘감추기 위하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예배)는 나의 욕망과 죄를 감추는 가면이 아닙니다. 기도(예배)가 나의 얼굴이 되어야 합니다. “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더보기 나는 흐릿하게, 주님은 선명하게 / 마가복음 7:1-13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복음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하나님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과 복음을 주님이 아닌 나를 선명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닌 외식이 되는 것입니다. (6절)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손 씻기와 유대인들의 고르반은...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선명하게 하는 외식일 뿐, 참 신앙이 아니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질서와 형식 그리고 원칙이... 하나님을 흐리게 만들고 나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것 역시 외식을 뿐입니다. 외식하는 자가 아닌 예배하는 성도가 됩시다. 나를 선명하게 하는 전통이 아닌, 하나님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명(말씀)을 따라 살..
더보기 우리는 예배자로서 반드시 두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첫째,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이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3절) 주의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삶으로는 실천하지 않는 것이 위선입니다. 말로는 사랑을 이야기 하면서, 고난 당하는 자 앞에서 울지 않는 것이 위선입니다. 둘째,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 자 하나니..." (5절)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경외)으로 고개를 숙이지 않고, (5~7절) 사람 앞에서 교만하게 머리를 들고 드리는 예배가 외식입니다. 지금 위선과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성도,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성도가 됩시다.
더보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는 당신 앞에서 '은밀하게' 행하는 성도를 원하십니다. (4절) 그렇다면 '은밀하게' 행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3절) 이는 몰래 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평판에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둘째, '골방' 들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6절) '골방'은 세속으로부터 잘려진, 그래서 하나님만 보이는 곳을 의미합니다. 셋째,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금식하는 것입니다. 남에게 보이려 옷을 찢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17절) 하나님은 우리의 요란한 자랑이 아닌, '은밀한' 순종 에 반응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합시다.
비트코인 무료 채굴하기 / 가입방법 “누구네 신이 더 자비로운지 다투다 이 지경 됐다지” → '신앙을 명분으로 한 폭력'은 비단 국제사회의 문제에 국한 되지 않는다. 우리(교회)는 항상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다는 근거 없는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사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단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교회 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 답지 않는 교회는 폭력적인 공동체로 변질된다. 2000년전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를 기억해 보자. 그들은 자신들 외에 이방인들을 개, 돼지로 생각했다. 얼나마 무자비한 폭력인가! 지금의 한국 교회도 2000년 전 그들과 많이 닮았다.우리 편이 아닌 다른 편은 무조건 개, 돼지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외식하는 자의 폭력을 멈추고,..
"손 잡아 주고 싶다고 발 걸지 마세요!" 모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드라마의 스토리와는 상관 없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대사였습니다. 우리가 드러내는 대부분의 분노와 반대 그리고 지적들은... 그것이 실제로는 진리와 참 가치를 위한 것이기 보다... 단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또는 내 공로를 인정 받거나 가치를 드러내고 싶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손 잡아 주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남의 발을 것은 외식(外飾)이고 폭력입니다. 정말 누군가의 손을 잡아 주고 싶다면... 주님이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냥 그 곁에 있어주며 함께 걸어 가면 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구원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