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만드셨는가? 흙으로?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만드셨습니다. 바로 이 생기, 즉 하나님의 호흡이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게하는 특징이며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은 짐승이나 나무나 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위하여 거짓과 위선, 시기와 질투 그리고 탐욕과 혐오의 호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호흡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2000..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 '파라'(생육)는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선한 열매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 '라바'(번성)는 성장하다, 자라다라는 의미입니다. 살아 있어야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혼돈과 공허(2절)를 질서와 생명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먼저 '나눔'을 통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궁창 아래와 궁창의 위의 물을 나누셨으며,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나뉘게 하셨습니다. 나눔이 없다면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공허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창조의 가장 중요한 질서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중요한 질서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한 몸이어야 하지만 또 남자와 여자의 다름, 즉 나눔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눔이 선명할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아무리 자식이 귀해도 부모의 상투를 잡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가정이나 일터..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하시니라'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 '바라'는 오직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존재도 '창조하다'라는 동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지금 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이 동사의 주어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황금으로, 막강한 군대로 그리고 지혜로 창조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쌓아올린 황금과 권력과 지혜의 바벨탑은 창조의 주어가 될 수 없었고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주어가 아닌 목적어(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의 주어의 자리가 아닌 목적어의 자리에 있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창조의 주어의 자리가 아닌 목적어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
[양탄자의 뒷면을 보는 사람] 어느 사람이 양탄자를 구하기 위해 유명한 장인을 찾아 갔습니다. 양탄자를 바라보던 그가 장인에게 말합니다. "소문과는 달리 당신의 양탄자는 전혀 아름답지가 않군요." 장인이 대답을 합니다. "이것은 제가 만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양탄자랍니다. 잘 보시지요."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냉정하게 대답합니다. "아뇨, 자세히 봤지만 전혀 아름답지 않아요. 색도 엉망이고 모양도 엉망이네요." 장인은 그에게 부드러운 말로 마지막 대답을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당신은 지금 양탄자의 뒷면을 보고 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는 좋은 예화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기에 부르심을 받은 선지자입니다. 나라를 빼았기고, 가족과 이웃들과 헤어져 베벨론에서 소망없..
[마28:43-45]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말씀(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결단 없이 외식하는 자들은 사탄의 놀이터인 빈 집과 같다. 착하게 살고 선의를 가지고 살고 선행을 행하더라도 예수가 없다면 빈 집에 불과하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 ^^
[마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율법(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신들을 경건과 거룩 그리고 정직과 정의로 포장해 왔다. 그리고 그 꾸며진 명성을 통해서 당시 율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종교적 귄위와 권세를 독점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안식일 논쟁을 통해서 율법을 다시 정의하고 적용하시는 예수님은 자신들의 기듣권을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 위협을 느끼는 순간, 가면뒤의 진짜 얼굴이 나타난다. 율법의 가면뒤에 숨겨 뒀던, 질투와 살의로 가득한 그들의 흉측한 민낮이 드러난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