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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절망을 이긴 부활의 소망! / 요한복음 11:17-27 [대련안디옥한인교회]

제목죽음의 절망을 이긴 부활의 소망! / 요한복음 11:17-27 [대련안디옥한인교회]2026-03-0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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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절망을 이긴 부활의 소망! / 요한복음 11:17-27 / 찬송가 380장

우리는 본문을 마주할 때,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보다 절망의 길 위에서 벌어진 주님과의 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대화 속에 나사로의 소생보다 더 깊은, 우리 실존을 뒤흔드는 진짜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1 나흘, 절대적 상실의 시간과 마르다의 항변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7절)

유대인은 죽은 자의 부패가 시작되는 나흘째, 죽음은 현실로 확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나흘이라는 시간은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진 절망을 의미합니다.

이 절망의 한가운데서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러 달려나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외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절)

마르다의 이 외침은 고통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던지는 가장 솔직하고 처절한 '탄식'이었습니다. 

2 현실을 회피하는 율법이라는 방어기제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24절)

이 구절에서 마르다가 말하는 '마지막 날의 부활'은 바리새파의 정통 교리였지만, 
현재의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하는 차가운 교리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마르다는, 피 흘리는 자신의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교리를 핑계로 삼아 먼 산 보듯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말씀을 현실을 외면하고 먼 산을 보는 핑계 거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언제나 현실에서 역사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3 마르다의 탄식과 현실 회피를 회복하시는 주님의 자기 선언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25절)

마르다에게 부활은 역사의 마지막에 일어날 어떤 '사건(Event)'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이 사건이 아니라 바로 마르다 눈앞에 서 있는 ’주님과의 관계'라고 선언하십니다.

주님이 서 계신 곳은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나흘째의 절망' 한가운데였지만, 
'생명'이신 주님이 마르다와 만나는 그 순간, 죽음의 탄식과 현실 회피로 가득했던 베다니의 길가는 생명이 충만한 부활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나사로의 육체가 무덤에서 나오기 전에...
이미 마르다의 영혼이 죽음의 탄식과 현실 회피의 절망에서 다시 생명으로 걸어 나오는 진정한 부활을 경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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