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포용, 친절과 친근함이란 단어는 항상 옳은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본절은 아담과 하와의 범죄 후 하나님께서 사람과 뱀에게 징벌을 내리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분풀이를 위한 벌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한 벌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친근함을 잃어버리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을 이대로 놔두었다간 영영 희망이 없을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형벌을 통해서 사람과 사탄의 친근함을 끊어버리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적개심'입니다. 사탄의 달콤한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에 속에 사탄의 ..

[창세기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은 하늘을 새로, 바다를 물고기로, 땅을 동물들로 채우신 후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 사람은 특별히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왜 성경은 하늘도 땅도 바다도 아닌 에덴 동산을 사람의 터전으로 특별하게 규정하여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사람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하기 위함입니다. 동산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גַּן(간)은 '울타리를 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울타리 안에서 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울타리는 진리와 은혜의 울타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세상의 원리가 아닌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의 질서..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은 사람을 무엇으로 만드셨는가? 흙으로?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만드셨습니다. 바로 이 생기, 즉 하나님의 호흡이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게하는 특징이며 능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호흡을 잃어버린 사람은 짐승이나 나무나 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호흡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욕망의 만족을 위하여 거짓과 위선, 시기와 질투 그리고 탐욕과 혐오의 호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거친 호흡은 우리의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를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2000..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일은 그들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육하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 '파라'(생육)는 열매를 맺으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 선한 열매가 있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번성하라고 하십니다. 히브리어 '라바'(번성)는 성장하다, 자라다라는 의미입니다. 살아 있어야 자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이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기를 원하십니다...

[창세기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혼돈과 공허(2절)를 질서와 생명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먼저 '나눔'을 통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궁창 아래와 궁창의 위의 물을 나누셨으며,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나뉘게 하셨습니다. 나눔이 없다면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공허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창조의 가장 중요한 질서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중요한 질서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한 몸이어야 하지만 또 남자와 여자의 다름, 즉 나눔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눔이 선명할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아무리 자식이 귀해도 부모의 상투를 잡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가정이나 일터..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조하시니라'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동사 '바라'는 오직 하나님이 주어가 될 때 사용하는 동사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존재도 '창조하다'라는 동사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지금 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이 동사의 주어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막대한 황금으로, 막강한 군대로 그리고 지혜로 창조의 주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쌓아올린 황금과 권력과 지혜의 바벨탑은 창조의 주어가 될 수 없었고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창조의 주어가 아닌 목적어(피조물)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의 주어의 자리가 아닌 목적어의 자리에 있을 때 가치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 창조의 주어의 자리가 아닌 목적어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
창세기 5장 아담의 계보에 나오는 족장들의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며'라는 말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수 백년의 삶 가운데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었을 것이지만, 성경은 그저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로 모든 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 잘 될 때, 안 될 때, 그 모든 순간의 현상과 상황이 아니라 그들이 그 때 누구와 동행 했는지를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상황을 말하고 감정을 말하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곤 합니다. 잘 먹고 잘 살고, 대접 받고, 누리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열심히 살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잘 살고 못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을 결정 짓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와 동행하느냐가 우리 삶을 경정 짓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추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