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보기 돌이켜 새롭게 되라! / 사도행전 3:1-26 1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미문에 앉아 세상을 향해 구걸하는 이에게, 세상이 아닌 ‘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4절) 이는 세상에는 소망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한 교회에 소망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2 나면서 걷지 못했던, 그래서 율법에 의해 부정하다 정죄 받았고...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았을 때... 그는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서 걷고 뛰게 되었습니다. (7절) 이제 그는 세상의 은과 금을 찾으며 구걸하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예배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3 우리는 어떻습니까? 혹 인생의 문제와 세상의 걸림돌에 걸려 성전 안에는 들어 오지 못하고 세상의 은과 ..

더보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두 종류의 사람 들이 있었습니다. (4절) 악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과 선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7-8절) 악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자기 옥합 을 지키기 위해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선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옥합을 깨뜨립니다. 참된 예배는 자기 이익을 계산 하는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기(이익)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께 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따져보면, 여인은 실패한 투자를 한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인의 행위를 ..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과 아벨의 예배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예배자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제물의 문제일까요?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중심은 사람도 제물도 아닌 바로 예배(제사)입니다. 온전한 예배와 그렇지 못한 예배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은 제사(예배) 후에 일어났습니다. 예배가 드려진 후 당연히도 기쁨과 감사, 섬김과 나눔이 넘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일들은 지금도 우리 ..

[시편132:2-7] 2 그가 여호와의 맹세하며 야곱의 전능자에게 서원하기를 3 내가 내 장막 집에 들어가지 아니 하며 내 침상에 오르지 아니하고 4 내 눈으로 잠들게 하지 아니하며 내 눈꺼풀로 졸게 하지 아니하기를 5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을 발견하기까지 하리라 하였나이다 6 우리가 그것이 에브라다에 있다 함을 들었더니 나무 밭에서 찾았도다 7 우리가 그의 계신 곳으로 들어가서 그의 발등상 앞에서 엎드려 예배하리로다 예배는 세속적인 소원(욕망)을 세우는 곳이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소원 즉, 서원을 세우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그 수많은 예배시간, 누구의 소원을 기원하고 있었나요?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 ^^
[마28:43-45]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44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말씀(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결단 없이 외식하는 자들은 사탄의 놀이터인 빈 집과 같다. 착하게 살고 선의를 가지고 살고 선행을 행하더라도 예수가 없다면 빈 집에 불과하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 ^^
[마12:14]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율법(종교)의 가면을 쓰고, 자신들을 경건과 거룩 그리고 정직과 정의로 포장해 왔다. 그리고 그 꾸며진 명성을 통해서 당시 율법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종교적 귄위와 권세를 독점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안식일 논쟁을 통해서 율법을 다시 정의하고 적용하시는 예수님은 자신들의 기듣권을 흔드는 위협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그 위협을 느끼는 순간, 가면뒤의 진짜 얼굴이 나타난다. 율법의 가면뒤에 숨겨 뒀던, 질투와 살의로 가득한 그들의 흉측한 민낮이 드러난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 ^^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앞으로 나가야 한다." -아인슈타인- 아이들 보여 줄 영화 한 편을 다운 받아서 15금 장면이 있나 점검하던 중 영화 속, 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어린 조카에게 보낸 삼촌의 편지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그렇죠? 자전거를 타 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장애물이 나타났을 때, 겁을 먹고 패달을 멈추면, 그 순간 자전거는 넘어집니다. 겁이나고 힘이들어도 자전거를 앞으로 움직여야 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앞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나도, 돌밭 같은 울퉁불퉁한 길을 가게되도 혹은 숨 넘어갈 듯한 힘든 언덕길을 만나도 자건거를 멈추지 맙시다. 기도와 찬양 예배를 멈추지 맙시다. 멈추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습니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