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예루살렘이 가까워 지면서 주님은 더욱 자신을 메시아로서 선명하게 드러내십니다. 이 드러냄은 나귀 새끼를 타시는 사건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남에 눈에 띄도록 어린 나귀를 타신 것은... 자신을 남에게 보이기 위한 쇼맨십(showmanship)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예배, 워십(worship) 이었습니다. (2-3절) 반면에... 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열광적으로 주님을 환영하던 군중들의 모습은... (8-10절)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예배(worship)이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쇼맨십(showmanship) 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이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던 손으로 예수님을 못 박았고..
더보기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매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5절)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은 정복을 상징하는 군마가 아니라, 겸손과 평화를 상징하는 나귀를 타고 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제자된 우리도 군마가 아닌 나귀를 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만과 자랑의 군마에서 내려와... 겸손과 평화의 나귀를 타고 가족과 이웃에게 다가가 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8절) 옷은 입은 자의 신분을 상징합니다. 그 옷을 왕의 길에 편다는 것은 왕에 대한 순종과 충성의 맹세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기 겉옷을 벗어 주님이 오시는 그곳에 펴놓아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예배의 자리입니다. 예배는 또 다른 성공의 옷을 껴입는 자리가 아니라... 세상의 겉옷을 벗..
아직도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며 나라 안팎을 시끄럽게 하는 일본을 보고 있자니.... 뻐꾸기가 생각이 납니다. 남의 둥지에 지 알을 까놓고, 지 새끼가 둥지 주인의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 떨어뜨리도록 멀리서 지 새끼에게 신호를 주며 우는 뻐꾸기... 이게 지금 일본이 하는 짓이고 그 새끼라 할 수 있는 친일파의 모습입니다. 지난 세월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루어낸 수많은 독립 유공자들이 뻐꾸기들에게 밀려 둥지에서 떨어져 죽어 갔습니다. 이제 대한 민국이라는 둥지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더이상 대한민국의 아들과 딸들이 뻐꾸기들에게 떠밀려 둥지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블로거에게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