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복음은 사상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그것은 듣고 보고 만져진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 복음이 들리게 하고, 보이게 하고 그리고 만져지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복음은 '사귐'(코이노니아)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와 사귀기 위해, 즉 보고 듣고 만지기 위해서 입니다. 주님과 우리 그리고 세상과 우리 사이에 이 '누림'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귐에는 결단이 필요 합니다. 사랑에 고백이 필요한 이유와 같습 니다. 내 부끄러움이 다 드러날 지라도, 빛 이신 하나님 앞에 설 용기가 필요합 니다. 우리의 예배는 공연이 아니라 실제(사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빛이신 하나님앞에 서는 용기 를 가지고 세상과 더불어 주님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더보기 열개의 사과 중 네개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여섯개가 아니라 내가 먹은 네 개의 사과 입니다. 누림(아칼)은 먹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절) 성경은 진정한 복이 소유가 아니라 누 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간과 건강과 그리고 물질을 쌓아 놓 기만 하다가 남에게 빼앗기는 어리석 은 인생이 되지 말고... 주를 위해 맘껏 사용하여 내것으로 만 드는 복을 누립시다. 또한 참된 복은 하나님과 화평하여 이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름은 하나님이 지으 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의 이름을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불행의 이름은 하나님과의 화평 이 깨진 우리가 만든 이름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화평하여, 아담이 하나 님의 뜻대로 세상의 이름을 불렀던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