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1 약속의 땅에서 성도는 세상의 올무에 매이지 않고 주의 멍에를 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6절) 세상이 보여 주는 화려함(유혹)은 우리를 실패와 좌절에 묶어 두는 올무입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멜 때 진정한 풍요로움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약속의 땅에서 성도는 세상을 두려워 하지 말고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해야 합니다. (18-19절) 하나님을 기억하는 신앙이 세상이 주는 두려움을 이기게 합니다. 3 약속의 땅에서 성도는 진멸당하는 것이 아닌 진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26절) 우리가 세상의 올무가 아닌 주의 멍에를 메고... 세상이 주는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을 기억하는 예배로 나갈 때... 우리는 진멸당하지 않고 진멸하는, 정복 되지 않고 정복하는 성도가 될 ..
더보기 1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진멸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2절) 진멸이란, 파괴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고르는 것 처럼 부정한 것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과 법이 아닐 때,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진멸입니다. 2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세상의 지체(혼인)가 아닌, 하나님의 지체로 사는 삶을 의미합니다. (3절) 손가락 하나도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서로 작용해야 하는 것처럼... 혼인이란 지체가 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3 약속의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매일 매순간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시작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8절) 출애굽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처럼... 우리의 매일의 일상도 우연이 아닌..
더보기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7절) 하나님의 심판은 진멸(멸망)을 위한 것이 아닌 회복을 위한 징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회복을 위한 심판 앞에 어떻게 서야 할까요? 첫째, 예레미야와 같이 그루터기의 신앙을 품고 심판 앞에 서야 합니다. 그루터기 하나가 결국 숲을 회복 시키는 것처럼, 그루터기의 신앙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 현실 너머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는 성도로 심판 앞에 서야 합니다. 모두가 현실에 취하고 마비되어 안주할 때, 예레미야는 말씀(심판)의 성취를 바라보고 탄식했습니다. (19절)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탄식하는 신앙이 심판가운데 소망의 씨앗이 되고 회복의 ..
더보기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여자와 아이까지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잔인함이 아닌 그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진멸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했던, 미디안의 음란과 타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미디안과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아닌... 적개심으로 그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쁜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 오면... 우리 몸이 그것이 해로운 것임을 알아보고 싸우는 것, 그 면역력이 적개심입니다. 그래서 이 적개심은 죄로 인해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고 능력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창3:15) 오늘도 모든 죄에 대한 적개심... 그 면역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