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말씀의 전달자 / 신명기 18:15-2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기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를 두려워했습니다(출 20:18,19; 신 5:23-27).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기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그치는 것은 그 백성을 향한 사랑과 통치를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듣느냐가 그 사람의 정체를 규정합니다. 점쟁이, 복술가, 무당, 신접자, 박수, 초혼자의 말을 듣고 사는 사람은 가나안 족속입니다(10-14절). 반면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은 참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나는 어떤 말에 귀 기울이고, 어떤 말을 따라 삽니까?
더보기 드디어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합은 왕의 권세를 가졌지만 엘리야는 도망자 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었지만 엘리야는 혼자 였습니다. 숫자로도 힘으로도 엘리야는 세상의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화려한 세상 앞에 초라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성도와 교회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21절)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6절) 즉, 성경은 갈멜산 위의 크고 힘있어 보이는 그들을 절뚝거리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21, 26절) 아무리 숫자가 많고 크고 화려해 보여도, 절뚝거림으로 온전함을 이길..
더보기 “벧엘에 한 늙은 선지자가 살더니...” 그가 벧엘에 살았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금송아지가 세워지고, 우상의 산당이 세워지는 모든 것을 보았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늙은 선지자 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노구의 몸을 일으켜 나귀를 타고 직접 유다의 선지자를 찾아 나섭니다. (12-13절)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는 것에는 아무런 상관도 않던 그는... 자기에게 손해가 미치게 되자 몸을 아끼지 않고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에는 둔감하고, 자기 손해에는 민감한 것, 이것이 바로 늙은 신앙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늙은 신앙의 모습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하나님의 ..
더보기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 하는 자들입니다. (30절) 그렇다면 그들이 말씀을 도둑질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교만함 때문입니다. (23절) 하나님은 각 사람의 마음 뿐 아니라 온 우주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도 그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기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자기 욕망의 꿈을 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25절)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없고, 내 꿈(욕망)이 말씀을 앞설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도둑질 하는 도둑이 말고, 말씀에 순종하고 충성하는 일꾼이 됩시다.
더보기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가운데 우매함을... 예루살렘 선지자들 가운데도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13-14절) 이스라엘이 결국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을 온전히 전할 선지자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의 선지자들은 세상의 요령과 처세술을 따르는 우매한 자들이었고... 예루살렘의 선지자들은 세상의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아첨하는 가증한 자들이었습니다. 참 선지자는 세상의 처세술이나 힘 있는 자의 편이 아닌... 언제나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말씀의 편에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미련해 보이고 더뎌 보이는 하나님의 방법과 손해 볼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자리가... 결국 우리에게 소망과 생명의 길을 열어주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