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드디어 엘리야는 갈멜산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아합은 왕의 권세를 가졌지만 엘리야는 도망자 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는 450명이었지만 엘리야는 혼자 였습니다. 숫자로도 힘으로도 엘리야는 세상의 상대가 되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화려한 세상 앞에 초라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성도와 교회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21절)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26절) 즉, 성경은 갈멜산 위의 크고 힘있어 보이는 그들을 절뚝거리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21, 26절) 아무리 숫자가 많고 크고 화려해 보여도, 절뚝거림으로 온전함을 이길..
더보기 가나안의 종교에서 바알은 비와 풍요의 우상입니다. 그래서 아합의 시대는 세속적 풍요를 숭배하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바알에게 취해 세속적인 풍요만을 추구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가뭄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가뭄은 선포 한다는 것은... 운동 선수나 학생이 경기와 성적을 위해 늘 즐기던 일상의 재미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도 역시 예배를 위해 가뭄을 선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똑같이 즐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예배 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예배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세상에서 즐기던 드라마, 운동 등을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세상을 즐기기 위해 예배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위해 세상 재미를 포기하는, 가뭄을 선포하는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