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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청년들을 위한 새벽 말씀 묵상입니다.

 

[고린도 후서 12:14]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1. 모든 만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만남에는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못하거나 각각의 목적이 있기 마련입니다.

 

교사와 학생의 만남에는 가르치고 배우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의 만남에는 치료하고 치료받으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장사꾼과 소비자의 만남에는 팔고 사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만남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냥 만난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다못해 부자와 거지의 만남에도 각각의 목적이 있습니다.

 

먼저, 이렇게 만남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건강한 관계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2. 올바른 목적은 건강한 긴장감을 가져 옵니다.

이렇듯 모든 만남에는 목적이 있는데,

눈여겨 볼 것은, 그 목적들이 같은 상황 가운데서 서로 다른 모양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교실이라는 같은 공간 안에 가르치려는 목적과 배우려는 목적이 함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건강한 '긴장감'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건강한 긴장감은 교사에게는 (학생들을 향한) 열정을 제공하고, 학생에게는 배움을 위한 인내를 제공합니다.

반면 이 긴장감을 잃어버린 교사는 시간을 때우기 시작하고, 학생들은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각각의 목적이 틀어지면 긴장은 사라지고 관계는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목적은 무엇일까?

 

 

3. 우리가 놓친 '목적'은 무엇인가? - 사람의 영혼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 안에 온전한 목적이 사라진데 있습니다.

사역자는 그들 사역의 목적을 잃어버렸고, 성도는 그들 예배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복음을 미끼로 자기 배를 채우려는 탐욕이 사역의 목적이 되었고, 봉사와 헌신을 담보고 그저 복을 받고자 하는 기복신앙이 예배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공에 대한 욕망은 넘쳐났지만, 교회 공동체로서 가져야할 거룩의 목적은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목적을 잃은 그들은 긴장하지 않았고, 긴장이 풀린 삶은 더이상 거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사도로서 고린도 교회를 향한 자신의 목적을 다시 천명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방문 목적이 재물이 아니라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방문의 목적은 오직 '공동체의 덕을 세우기 위함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19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잃어버린 목적을 알았습니다.

그는 고린도 교회가 예배와 봉사와 섬김 그리고 모든 사역 가운데 잃어버린 목적이 '한 사람의 영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오늘날 이 목적을 잃어 버린 교회일지 모릅니다.

 

 

4. '사람''교회'입니다.

주님께서 한 사람을 위해, 그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처럼,

한 사람, 그 한 영혼이 바로 교회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교회로, 예배하는 공동체로 만나는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공동체 안에 건강한 긴장감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목회자를 목회자답게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 어떤 고단하고 두려운 순간에도 '한 사람'을 놓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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