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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몸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지만, 아이들은 몸을 보이기 위해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를 보이기 위해 옷을 입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많은 어른들이 실제 자기 몸은 가리고, 옷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자기라고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가운이 목사를 만들지 못하고, 판사가운이 판사를 만들지 못하며, 의사가운이 의사를 만들지 못합니다.

명품 옷을 입었다고 명품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목사의 옷을 입었지만 목사답지 못하고, 판사의 옷을 입었지만 판사답지 못하며, 의사의 옷을 입었지만 의사답지 못한 인생이 많습니다. 명품 옷을 입었지만 불량 인생이 많습니다.

 

문제는 옷에 있지 않습니다. 그 옷을 나를 가리기 위한 목적으로 입은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보이고 내 삶이 보이는 옷은 그를 더욱 겸손하게 무룹을 꿇게 할것입니다.

목사의 옷이 그를 보여 줄 때, 더욱 겸손할 수 있습니다.

판사의 옷이 그를 보여 줄 때, 더욱 정의로울 수 있습니다. 

의사의 옷이 그를 보여 줄 때, 더욱 섬며 돌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은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합니다.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

우리 성도가 입어야 할 이 옷도, 그러나 나를 가리기 위해 입는 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를 가리기 위해 입은 전신갑주는 남을 모욕하고, 주눅들게 하며, 상처를 줄 뿐입니다.

늘 부족한 내가 보이고, 연약한 내가 보이는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그 때 약한 나를 통헤서 주님이 보입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전에는 그 자신을 가리기 위해 율법의 옷을 입고, 전통의 옷을 입고 남을 모욕하고, 주눅들게 하며, 상처를 주었지만, 그랬던 그가 주님을 만나고, 그 옷을 입은 후에는 오히려 더욱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바울이 자기 약함을 드러냈을 때 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그를 통해서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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