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불평과 원망 그로인한 실패는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어리석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하나님은 토기장이 이시고, 나는 그가 만드신 그릇임을 아는 것입니다. (21절) 스스로 주인 되려는 자들은 귀하고 천한 것에 주목하지만... 하나님의 주권(토기장이)을 아는 자들은 그가 쓰시는 것에 주목합니다. 귀하고 천한 것은 우리의 욕심이 낳은 허상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가 쓰실 그릇인가 아닌가 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폐허 속에서 그루터기(남은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27, 29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사명을 포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
더보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노력하고 살 필요가 없다는 운명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택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울은 하나님께서 오직 긍휼로 모든 것을 선택하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혹은 택하심)은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든 삶의 갈림길에서 생명과 진리의 길을 선택하기를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정해졌습니다. 이제 우리의 선택이 남았습니다. 오직 믿음, 내 공로가 아닌 선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오늘도 택함 받은 자의 길을 걸어가시 길 바랍니다.
더보기 주를 믿는 성도가 세상에 질 수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1절) 첫째는 주님이 성도를 위하시기 때문입니다. 위하시면(ὑπέρ 휘페르)은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호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호소하심은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모든 것을 내어 주시고 공급해 주십니다. 힘들고 지칠 때 날 위해 호소하시는 주님을 기억합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35절) 둘째는 주님이 성도를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본 절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은 아가페(ἀγάπη)입니다. 지금도 세상 속에서는 온갖 이유로 사랑이 끊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주님의 사랑을 끊을 이유가 세상에 ..
더보기 더 이상 율법의 올무나 율법주의의 함정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5-6절) 성도인 우리가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 거한다는 것은... 육신의 일, 즉 성공인 아닌 영의 일, 곧 승리를 소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승리한 사람이 가는 것임을 기억합시다. 둘째, “너희는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5절) 교회인 우리가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무..
더보기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19절) 바울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을 반복해서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의 이 고백은 자포자기의 넋두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이었습니다. 환자가 자기의 병을 인정할 때 치료가 시작 되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의 무능력을 고백할 때, 예배가 시작되고 치유와 회복이 시작됩니다. 무능력을 내가 붙들고 있으면 상처가 되고 약점이 되지만... 하나님께 고백하고 맡기면 능력이 되고 강점이 됩니다. 오늘도 쎈척하는 교만이 아닌, 무능력을 고백하는 겸손으로 예배를 시작하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누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7절) 율법은 통증입니다. 몸에 나쁜 바이러스가 들어 오면, 통증이 그 위험을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 처럼... 율법은 죄의 위험을 우리에게 경고하는 통증입니다. 그런데 통증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통증을 느꼈다면 약이 필요합니다.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 약(치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즉, 통증이 약을 찾게 하는 것처럼,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를 바라보게 합니다. 이제 다시 말씀을 통해 죄에 대한 통증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고... 또한, 그 통증을 통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죄로 인한 ..
더보기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7-18절) 죄(세상)는 콜라와 같습니다. 그 톡 쏘는 맛이 미각을 자극하여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것 같으나... 실상은 더 큰 갈증으로 그 자극에 중독되게 할 뿐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의는 생수와 같습니다. 콜라에 비하면 아무 맛도 없지만... 생수는 우리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갈증을 해소시켜 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콜라가 아닌 생수입니다. 즉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으로 살고... 콜라가 아닌 생수를 구하여... 인생의 갈증이 해소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절) 성경은 성도를 여러가지 의미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종과 백성과 자녀로 때로는 양으로 그리고 빛과 소금 등으로...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전의 비유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비유로 성도를 설명합니다. 바로 ‘무기’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들입니다.(3절) 이는 우리가 더 이상 세상의 무기가 아니요 하나님의 무기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11절) 세례 즉, 죄에 대하여 죽기 전, 우리는 세상의 무기였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거짓의 무기였고, 얼굴은 불평의 무기였으며, 손과 발은 폭력의 무기였습니다. 그랬던 우리가 세례를 통하여,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