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1. 때를 찾고 사람의 수고와 노력만으로 시기와 기회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짚신 장수가 비를 그치게 할 수 없고, 우산 장수가 비를 오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시기와 기회, 즉 때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11절) 그래서 우리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 입니다. 성실한 짚신 장수가 맑은 날의 대목을 만나고, 성실한 우산 장수가 비오는 날의 대목을 만나는 것입니다. 2. 지혜를 찾으라 참된 지혜를 찾는 것은 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황금은 땅 속에 뭍혀있습니다. 흙이 뭍어 있다고 황금을 버리는 것은 미련한 것입니다. (15절) '가난한 지혜자'에게서 가난을 걷어 내고 지혜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목수'의 편견을 걷어내지 못하고 ..
더보기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의 의미와 살아있음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즉 인간 지혜의 한계와 하나님의 주권을 선명하게 대비합니다. (1절) 하나님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임을 기억합시다.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신6:16) 시험(나짜)하지 말라는 맛보지 말라, 간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간 보려고 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지혜가 없을 때, 악으로 가득한 미친 마음으로 살아 갑니다. (3절) 죽음은 삶을 더욱 선명하게 해주는 명암과 같은 것입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4절) 죽음은 삶이 기회라는 것을 선명하게 합니다. 당신이 살..
더보기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담대히 악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잠언24:1'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약속이 더디다고 의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벧후3:9'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더딘 것이 아니라 ...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악인의 형통함 속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를 기억합시다. 지혜와 명철로 집을 세우고, 나 때문 에 오늘도 인과응보를 미루시고 인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억합시다.
더보기 지나치면 문제가 생깁니다. 물도 넘치면 홍수가 되고, 소금도 지나치면 쓰고, 약도 과하면 독이 됩니다. (16절) 그러나 충만한 물은 가뭄을 이기고. 적당한 소금은 맛을 내고, 적량의 약은 병을 이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는 '지나침'의 유혹을 이기고 '충만함'의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지나침'은 조절되지 않는 힘이고, '충만함'은 조절되는 힘입니다. 힘을 조절하는 것, 즉 댐의 수문과 같고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18절) 잠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잠9:10) 그 지혜의 수문과 브레이크로 우리의 삶이 넘치지도 안고 지니치지도 안은 충만함의 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더보기 열개의 사과 중 네개를 먹었다면 남은 사과는 여섯개가 아니라 내가 먹은 네 개의 사과 입니다. 누림(아칼)은 먹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절) 성경은 진정한 복이 소유가 아니라 누 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시간과 건강과 그리고 물질을 쌓아 놓 기만 하다가 남에게 빼앗기는 어리석 은 인생이 되지 말고... 주를 위해 맘껏 사용하여 내것으로 만 드는 복을 누립시다. 또한 참된 복은 하나님과 화평하여 이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이름은 하나님이 지으 셨습니다. 하나님은 불행의 이름을 지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불행의 이름은 하나님과의 화평 이 깨진 우리가 만든 이름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화평하여, 아담이 하나 님의 뜻대로 세상의 이름을 불렀던 것 처럼..
더보기 인간이 끊임없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유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서 입니다. (8절) 그러나 그 공호함은 죄로 인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리이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택 해야 합니다. 악을 더 큰 악으로 이기는 것은 승리 가 아닙니다. 더 큰 실패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불공평' 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제 몫'(19절)을 주십니다. 이는 각자 받은 시간과 건강과 소유가 다르다는 의미입니다.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그런데 우리가 이 '불공평'을 선택할 때 하나님의 불공평하심은 '차별'이 아니라 '선물'(19절)이됩니다. 그리고 그 선물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습니다. '응답하..
더보기 자기 발을 삼가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삼가하라'(샤마르)는 지키라는 의미입니다. (1절) 하나님이 그으신 경계표, 그 질서를 빼았기지 말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빼앗기는 것이 타락입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2절) '함부로'(바할)는 방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자기 욕심으로 떠드는 모든 말은 주의 정의를 방해하는 말입니다. 함부로하는 말은 기도와 찬송이 될 수 없고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서원을 지키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름이 하나님과 나 사이의 서원입니다. '안디록교회', '부모', '직분'의 이름... 이 이름에 걸맞게 사는 것이 서원을 지키는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오늘 하루... 단신의 발을 삼가며, 함부로 말하지 아니하며,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