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례식과 주변 정리를 마치고 중국에 들어 온지 한 주가 다 되어갑니다. 그런데 아직도 아버지의 부재가 실감이 나지를 않습니다. 금방이라도 예전처럼 전화기 넘어로 "별일 없냐?" 라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이제서야 한국에서 들고 온 가방정리를 하다가 백팩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메모지 한 장을 찾았습니다. 메모지에는 '아버지께 쓰는 편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장례식 마지막 날, 발인예배를 아버지가 섬기시던 교회에서 드리게 되었는데, 집례하시는 목사님께서 유족대표로 아버지께 쓰는 편지를 준비해서 장례식 중에 낭독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었습니다. 그 때 빈소에서 먹먹한 가슴으로 간신히 메모지에 몇 자 적었었습니다. 사실 그때 가장 쓰고 싶었던 것은 '아버지가 보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
인천 공항입니다. 이제 출국수속 마치고 들어갑니다. 잠시 병원치료 받으러 왔다가,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않고 무겁기만 합니다. 제가 이런데 오십년 가까운 세월을 아버지와 함께하신 어머니는 얼마나 안타깝고 슬프실까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천국에 가신 것을 믿으면서도, 지금은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떨치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어머니께 슬프실 때 참지마시고 마음껏 우시라고 말씀을 드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하나님이 만져주시길 기도 하면서요.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머니와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집을 나서는데 아버지가 가꾸시던 화분에 꽃이 활짝 피어 있네요. 아버지의 미소가 많이 그립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이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우리 교회는 새벽기도회 설교를 매일 성경 본문을 따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대심방을 준비하면서 은근~ 마음으로는 새벽예배 본문이 좀 쉬웠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램은 바램일뿐, 3월에 받아 본 매일성경에는 약이라도 올리는 것처럼 4월 말씀 본문이 레위기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변변한 주석 하나 없는 목양실의 현실... 그렇다고 어디 가서 당장 필요한 책을 구할 수도 없는 더 답답한 이 나라의 현실... 그래도 정신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어서...여기 저기 뒤지고 있는데... 눈에 책 한권이 들어 왔습니다. "레위기의 산을 정복하라" - 소강석 어!!! 저 책을 내가 언제 샀지? 그리고 저 분 책을 왜 샀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지난 주일 부터 무슨 정신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일 막 예배가 시작되려고 하는 그 시간, 시간을 확인 하기 위해 핸드폰의 시간을 보려고 하는 그 순간 진동이 울렸다. 잠금 화면 속 보여지는 요약된 메시지에는 "아무개 목사님께서 한 시간 전에 소천하셨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떨리기 시작했다. 바로 며칠 전에도 통화를 했던 미국에 있는 신대원 동기 목사님의 소식이었다. 고인은 신대원 3년 내내 같은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 던, 내게는 '형'같았던 나보다 두 살 많은 목사님이었다. 그 기숙사에 함께 지내면서 각자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그리고 아이도 낳고, 인생의 황금같은 시간들을 함께 공유했던 그런 목사님이었다. 졸업 후 나는 서울에서 그리고 형님 목사님은 부산에서 사역하는..
오늘 대심방 후 14목장 식구들과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대련의 명물 명동칼국수에 왔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인데요, 오늘 대심방을 기념^^해서 특별한 메뉴들이 많이 나왔답니다. 그런데 그 중 단연 모두의 시선과 마음을 빼앗은 비주얼의 요리가 있었는데요. 다름 아닌 '김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김밥은 우리 모두의 경험과 상식을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김밥이 꽁치를 품고 있었습니다. 일명 '꽁치를 품은 김밥' 보신적이 있나요... 전 오늘 첨 봤습니다. ㅎㅎㅎ 아니 김밥이 꽁치를 품을 수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그 비주얼과 맛에 아직도 심장이 떨립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