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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창고/시사&상식

택시와 카풀

NAMU230 2018. 10. 19. 08:37





택시와 카풀은 협상 파트너 아니다.


[이균성 칼럼] 생계와 혁신의 불화


▶ 택시 업계와 카풀 업계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에 대해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장병규 위원장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위한 끝장토론 자리에 택시 업계가 참여조차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장 위원장으로서는 해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수십 번을 찾아가 설득해 테이블에 앉게 했다 하더라도 양쪽이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 그 이유는 간단하다. 택시 업계와 카풀 업계는 서로 합의를 위한 협상 파트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은 이해당사자 사이에 뭔가 주고받을 게 있을 때 가능하다. 서로 주고받을 게 있어야 합의에 이를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빼앗긴다고 생각할 때 협상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 경우가 그렇다. 택시는 협상에 나서봐야 빼앗기는 데 명분만 제공할 뿐 얻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 택시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카풀이 활성화하면 택시 시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카풀이 택시 시장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잃지만 얻을 것은 없다. 일반 경쟁시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은 하소연조차 하기 힘들다. 해봐야 얻을 것도 없다. 빨리 다른 시장으로 옮기거나 경쟁력을 강화해야 살아남는다. 문제는 이 시장이 일반 경쟁시장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 택시는 국가가 면허를 주는 규제 운수 시장이다. 면허 없이 운수 영업을 하는 건 불법이다. 자가용으로 택시 영업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회적으로 그런 법규를 만든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 면허는 그 수가 제한돼 있고 그래서 일종의 기득권이기도 하다. 면허가 돈으로 거래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택시 면허를 사는 이유는 그 권리를 국가와 사회가 보장한다는 믿음 때문일 거다.

▶ 카풀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문화로서의 카풀이다. 출퇴근 장소가 비슷한 사람끼리 자가용을 같이 이용하는 거다. 여러모로 이점이 많다. 택시도 이를 반대하지 않고 반대할 명분도 없다. 다른 하나는 사업으로서의 카풀이다. 본질은 자가용을 이용한 운수업이다. 지금 논란이 되는 카풀은 이것이다. 이는 택시 면허 제도를 없애는 일과 같다. 차만 있으면 누구나 영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자가용 불법영업은 과거부터 계속 쭉 있어왔다. 하지만 그 수가 적고 몰래몰래 하는 일이어서 택시 시장에 큰 타격을 주지는 않는다. 또 불법영업자들은 걸리면 벌금을 낼지언정 이를 합법화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지금 논의되는 카풀은 다르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자가용 영업을 합법화하라는 것이다. 그 범위는 처음에 제한적이겠지만 점차적으로 커져 종일 카풀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 그걸 허용하면 택시 시장의 과거 질서는 깨질 수밖에 없다. 자가용 영업은 늘어나고, 택시 면허는 무의미해지며, 그 권리금은 추락할 것이다. 나라에 의해 수많은 사람의 경제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것이다. 기득권이라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량한 것'이다. 그 기득권으로 겨우 생계나 유지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불법영업과 법제도 그러니까 규제의 변화는 그렇게나 차이가 크다.

▶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과거 불법영업자들의 경우 자가용 영업을 허용하라고 주장할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카풀의 경우 이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가용 영업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IT 기술을 이용한 혁신’이라는 표상 때문이다. 이 표상으로 인해서 개인의 자가용 영업은 나쁜 일이 되고, 카풀은 세상을 혁신하면서 편리함을 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 그 표상과 그에 대한 인식이 진실로 인간을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결국 ‘IT 기술을 조금 더 많이 이용하는’ 전국 규모의 택시업체가 등장할 뿐이다. 또 그 전국 규모 택시업체에 소속돼 운전하는 기사는 늘어나고, 기존 개인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는 줄어들 것이다. 이 노동이 저 노동으로 대체되는 셈이다. 그로 인해 돈 버는 주체만 바뀌고. 그게 세상을 더 이롭게 하는 것일까.

▶ 유행가가 바뀌듯 그것 또한 시대변화라고 치자. 하지만 국가 정책의 변화로 인해 그 알량한 기득권(생계가 달린 경제권)이 없어진다면, 그것에 대한 보상 논의부터 진행돼야 하는 게 옳다. 그 보상은 카풀 업체가 할 일도 아니고 할 능력도 없다. 택시업계가 카풀과 마주 앉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정부에만 이야기 하는 거다. 혁신을 하더라도 생계를 유지할 길은 마련해주라는 거다.

▶ 수십만 택시 기사들은 늙고 배운 바 없어 젊고 세련된 카풀 기업에 비해 혁신을 논하기조차 부끄러울 수 있다. 적기조례처럼 기술 반동(反動)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불친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가 정한 대로 성실히 일해 한 푼 두 푼 모아 겨우 면허를 사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의 이웃이다. 혁신에 느리다고 비아냥대고 사지로 몬다면 4차산업혁명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겠나.

▶ 4차산업혁명과 산업구조의 혁신은 그래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적으로 구조 혁신에 따른 안전장치가 준비되면서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취약해지는 산업에 대해선 국가 보조금과 그곳에 일하는 사람의 전직을 위한 재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잖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직 생계를 위해 광화문에 머리띠를 두르고 나올 수밖에 없다. 논란과 토론을 단순화해버리면 누군가는 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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