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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착취를 목적으로 아동이나 청소년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조종 통제를 통해서 성적 학대를 유지하는 범죄를 그루밍 성폭력이라한다.


이 생소한 단어가 요즘 연일 세간의 관심을 받는 것은, 인천의 어느 교회 목회자가 그가 가르치던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수년간 이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음이 드러나면서 부터이다.


정말 참담하고 끔찍한 그리고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단지 비정상적인 특정 목회자의 병적인 일탈 정도로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모든 목회자는 잠재적인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교회 조직의 특성상 목회자는 리더이면서 상담자이고 코치이며 치료자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정서적으로 종속되기 쉬운 구조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더우기 종교라는 울타리는 목회자들에게 일반인들이 상상도 할 수없는 권위를 부여해 주기도 하기에 더욱 그렇다.


목회자인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해도 실상 교회의 구조가 그렇다는 걸 누구도 부정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목회자는 그들의 리더십과 권위를 항상 점검 받아야 한다. 


먼저, 교회 안의 여러 제도들을 통해서 점검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역사 속에서 이미 많은 안전 장치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담임목사 재신임 제도를 시행하는 교회들이 있다. 내가 속한 장로교회는 재신임 재도가 교회 헌법에는 없지만 개 교회가 정관으로 정해서 시행하는 교회들이 있다. 내가 담임하고 있는 교회도 재신임제도가 있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목회자의 목회와 목양을 평가 받고 재신임 혹은 불신임을 묻는다. 이 외에도 당회의 효율적이 운영을 통해서 혹은 제직회를 비롯한 교회 조직의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 목회자는 자신의 이더심과 권위를 점검받아야 한다.

 

 

또한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 이제와서 누구도 목회자의 셀프점검을 인정해 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해야한다. 


모든 목회자가 잠재적인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일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목화자들이 범죄 성립의 요건까지 도달하지는 않았을 지몰라도 이미 그루밍을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목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누군가 나에게 필요 이상의 (이성으로서의)호감을 보이거나 감정적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느낌으로 다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때, 이 관계를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 명확하게 선을 긋지 않고 다가오도록 혹은 기대도록 놔두는 목회자들이 많다.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사실 이게 진짜 무서운 것이다.


전도사 시절 혹은 부목사 시절 학생들에게나 청년들에게 러브레터 안받아 본 목회자는 별로 없다. 특히나 찬양 사역자나 청소년, 청년 사역자들에게는 흔한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은근히 즐기려는 그 마음을 접어야 한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면 그 다음은 범죄다. 아니 성경은 이미 은근히 즐기는 그 마음을 간음이며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한다. 


어느 목회자의 부끄러운 밑낯이 들어난 이 사건을 내 이야기로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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