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말씀을 일상으로 살아내라! / 신명기 22:1-12 예배와 일상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도는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말씀을 일상의 삶으로 살아내라는 가르침입니다. 1 성도는 이웃의 문제를 못 본 체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1-4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처럼... 성도는 문제를 피해가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 위해 수고해야 합니다. 2 성도는 남녀의 의복을 바꿔 입지 말고,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밭 갈지 말아야 합니다. (5, 9-10절)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지켜, 각각 자기를 만드시고 사명의 자리에 세우신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역할과 사명을 감당하라는 가르침 입니다. 3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
더보기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7절) 하나님의 심판은 진멸(멸망)을 위한 것이 아닌 회복을 위한 징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회복을 위한 심판 앞에 어떻게 서야 할까요? 첫째, 예레미야와 같이 그루터기의 신앙을 품고 심판 앞에 서야 합니다. 그루터기 하나가 결국 숲을 회복 시키는 것처럼, 그루터기의 신앙을 가진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회복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둘째, 현실 너머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는 성도로 심판 앞에 서야 합니다. 모두가 현실에 취하고 마비되어 안주할 때, 예레미야는 말씀(심판)의 성취를 바라보고 탄식했습니다. (19절) 말씀의 성취를 바라보며 탄식하는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 탄식하는 신앙이 심판가운데 소망의 씨앗이 되고 회복의 ..
[고린도전서 14:20-40] 더보기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고린도전서 11:2-16] 더보기 2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전통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4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5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6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8 남자가 ..
[창세기 1: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혼돈과 공허(2절)를 질서와 생명으로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였습니다. 그리고 그 창조는 먼저 '나눔'을 통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궁창 아래와 궁창의 위의 물을 나누셨으며, 땅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나뉘게 하셨습니다. 나눔이 없다면 세상은 여전히 혼돈과 공허의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은 창조의 가장 중요한 질서이며, 동시에 우리 삶의 중요한 질서이기도 합니다. 부부는 한 몸이어야 하지만 또 남자와 여자의 다름, 즉 나눔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눔이 선명할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아무리 자식이 귀해도 부모의 상투를 잡게 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 가정이나 일터..
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묵상입니다. [예레미야애가 2:20] 20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누구에게 이같이 행하셨는지요 여인들이 어찌 자기 열매 곧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먹으오며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어찌 주의 성소에서 죽임을 당하오리이까 당신의 눈물은 살리는가 죽이는가? 축복과 진노 모두 그 시작은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 있는 자에게 축복을 그 언약을 잃어버린 자에게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다지 아파서 혹은 힘들어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 언약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다시 기억하고 회복하기 위해 울어야 합니다. 언약을 회복하고자 하는 그 눈물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단지 아파서 힘들어서 우는 자들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심판의 때 우는 자는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