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방향보다 자신의 상황에 집중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병약한 아버지 다윗 그리고 왕위 계승자인 형들의 죽음을 자신이 왕이 될 기회로 보았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방향(계획)은 무시한체 자신에 상황에 맞춰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상황에 맞춘 그의 계획은 하나님의 방향(계획)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가 성도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나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순종과 충성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을 보는 사람은 요령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방향을 살피는 사람은 순종과 충성으로 살아갑니다. 오늘도 상황에 맞춰 요령껏 살아가는 아도니야와 같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을 따라 묵묵히 순종과 충성으로 살아가는 성도..
중국 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 묵상입니다. [요나서 1:1-3]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 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요나 선지자는 왕하14장에서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던 나름 큰(?) 선지자 였습니다. 그러나 요나서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민족의 미래를 예언하고 심판을 선포하는 선지자로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약하고 부정한 모습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경이로움의 정체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것을 본적 있나요? 군무(群舞)를 추며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움이 단지 처음보는 신기한 광경 때문만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군무(群舞)를 추는 새들에게서 우리는 놀라운 모습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도 길을 걷다가 서로 어깨를 부딛히거나 발을 밟기 일수인데, 저 작은 미물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새들의 군무를 보는 이에게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더해 줍니다. 왜! 부딪히지 않을까?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은 매일 좌충우돌하는 우리에게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