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예상 할 수 없는 상황을 불안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모든 상황을 예상 가능한 상태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을 만들 때도 검증된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음식 맛이 다 똑같아 지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문제이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람의 입맛은 다 다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방송 레시피가 정답이라고 믿고 사는 요즘 사람들은 어쩌면 자기가 짠 것을 좋아하는지 단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획일화와 규격화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각자의 개성과 특징, 그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사람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잣대를 가지고 살아 간다.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예상 가능한, 다시..
지난 휴가 때 온 가족이 어머니댁에서 지냈다. 집에만 있기가 지루했는지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몰두 했고, 이를 못마땅하게 보던 아내는 아이들을 불러 야단을 쳤다. 한참 야단을 맞은 아이들은 더이상 게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아이들의 할머니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엄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독여 주신다. 그리고 아이들의 표정이 누그러지자 엄마가 왜 야단을 쳤는지, 야단을 쳤던 엄마의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설명을 해주셨다. 그제서야 아이들의 얼굴에 짜증이 아닌 반성의 기운이 보였다. 왜 아이들의 반응에 차이가 있었을까? 단순히 엄마보다 할머니가 좋았던 것이었을까? 아니다! 이유는 엄마는 아이들에게 야단을 쳤지만,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혼을 내주셨기 때문이다..
[펌] 해외학회에 갔다가 돌아온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이와 같이 밥을 먹었는데, 아이가 게눈 감추듯이 밥을 먹고는 일어나서 자기 방에 가는 것이다. 아이와 밥을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싶고 아이 얼굴도 보고 싶은데 아이는 부모와 눈도 맞추지 않고 먼저 식사를 하더니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좀 더 함께 있다가 일어서라고 했더니 몇분 앉아 있다가 “이제 일어나도 되죠”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라”라고 말했지만 좀 아쉬움이 있었다. 의 저자이며 토론식 교육으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교 마이클 센델교수는 두 아들이 5~7세쯤부터 온 가족이 저녁식사 식탁에 둘러앉아 토론식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두 아이들이 일상생활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상황에서는 어떤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