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보기 |부활의 신앙|이란... 시련과 고난 그 절망과 두려움 앞에서 거룩한 |용기|를 잃지 않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았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처럼... |십자가 앞|에서 용기를 잃지 않았던 이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58절)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용기 를 내어 마지막까지 주님의 무덤을 지켰습니다. (61절) 그 |용기|가 그들로 하여금 부활의 |첫 증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용기|를 냅시다. 삶의 모든 시련과 고난 그 두려움 앞 에서 |도망가지 말고|... 주님이 맡기신 내 사명과 역할의 자리 를 |지킵시다|. 주님은 내가 용기 내어 지킨 |그 곳|에..
더보기 빌라도의 법정은 예수를 고발하는 요란한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소리 앞에서 침묵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 침묵을 하나님 언약의 성취 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의 침묵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고함소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침묵을 다시 회복합시다. 침묵은 이해할 수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침묵은 두려움 앞에서도 순종으로 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앞에서 내 변명을 멈추고... 주를 향한 믿음과 순종의 침묵으로 하나님의 고함소리가 들리게 합시다.
더보기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 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 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3절) 마태는 회개가 아닌 후회를 의미하는 단어, '뉘우쳐'(μεταμέλομαι)를 사용 함으로... 회개가 아닌 후회하고 있는 유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후회는 필연적으로 남을 탓하게 되어 있습니다. 후회로 인한 자책이라는 감정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결국 남을 탓하는 감정 입니다. 그래서 결국 후회는 폭탄 돌리기가 될 뿐입니다. 부끄러운 은 삼십을 서로에게 던지는 유다와 대제사장들처럼 말입니다. 결국 후회의 폭탄 돌리기는 유다의 자살, 피밭, 힌놈의 골짜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8절) 힌놈의 골짜기는 우상에게 자기 자녀를 불태워 던졌던 곳입니다. 자기 성공과 ..
더보기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 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58절) 베드로는 주님과의 거리(간격)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순종과 충성, 친밀함의 거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멀찍이 주님을 구경하던 그는... 결국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스스로 맹세하고 저주하며 부인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을 드려내시는 주님 앞에서... 베드로는 혼자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을 통해 우리는 다시 주님 과의 거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멀찍이 구경하는 거리를 넘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거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 동행의 거리를 회복하여서... 세상의 조롱앞에 나를 감추고 숨기는 성도가 아니라, 내가 교회임을 드러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더보기 유월절은 이름이 바뀐 사건입니다. 애굽에 매여 종의 이름으로 살던 이들 이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을 회복한 사건입니다. 구약의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 엘의 이름을 바꾸었듯... 이제는 십자가의 예수의 피가 우리의 이름을 바꾸십니다. 구약의 유월절에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랐다면... 신약의 유월절은 주의 살과 피를 먹음 으로 우리의 전인격에 주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26-28) 이를 통해 우리의 이름이 바뀝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이름에 세상의 수식어가 아닌 하나님의 목적이 붙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돈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 높은 사람이 되기 보다... 예배하는 자, 섬기는 자, 낮은 자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더보기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두 종류의 사람 들이 있었습니다. (4절) 악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과 선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7-8절) 악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자기 옥합 을 지키기 위해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선한 계획을 세우는 이들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옥합을 깨뜨립니다. 참된 예배는 자기 이익을 계산 하는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기(이익)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한 여인이 삼백 데나리온의 향유를 예수께 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국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 따져보면, 여인은 실패한 투자를 한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인의 행위를 ..
더보기 첫째, 주님이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청지기임을 의미합니다. 청지기에게 삶은, 그의 것이 아니라 맡겨진 것입니다. 맡겨진 것이기에 맡긴이의 의도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당신의 하루는 누구의 의도대로 쓰여지고 있습니까? 둘째, 달란트는 재능에 따라 각각 다르게 맡겨집니다. (15절) 이는 주님이 우리를 차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형편에 따라 공평하게 맡기 신다는 의미입니다. 어린 아이와 어른에게 다른 것을 맡기시는 것이 차별이 아닌 것처럼... 셋째, 주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사용하는 충성된 태도를 요구합니다. 주님은 결산할 때에 달란트의 무게를 재시는 것이 아닌, 우리의 태도를 보 십니다. (21절) 오늘은 나에게 맡겨진 달란트 같은 날임을 기억하고... 세상의 성공인 아닌, ..
더보기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1-2절) 미련함과 슬기로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성경은 의무를 초월하는 것이 슬기로 움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는 것, 속옷을 달라 하면 겉옷까지 주는 것, 오 리를 가자 하면 십 리를 함께 가는 것... 이것이 의무를 초월하는 슬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의무를 초월함이 세상에 볼 때는 오히려 미련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세상의 눈에는 미련한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기름을 상식보다 더 많이 준비한 처녀들이... 세상의 눈에는 오히려 요령도 없고 미련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이 나타났을 때... 세상의 미련함은 잔칫날의 슬기로움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