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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Book

아래를 보세요!

NAMU230 2018. 9. 27. 18:57



 

 

사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위로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배고플 때는 나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생각하고, 내가 외로울 때는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주 이기적인 방법이지만 인간이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라"고 하신 어른들의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하루하루 고통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어느별에서 중에서... 

 

우연히 지하철 승강장 안에서 약속 시간이 어긋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승강장 통로 기둥 앞에 맹인들이 몇명 모여 있었습니다.

 

나는 무심히 그들을 보고 있다가 차츰 그들을 눈여겨 보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지하철을 오가며 구걸을 하는 맹인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피곤한 몸을 조금 쉬기도 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 맹인들을 만나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지하철을 타는 순서를 꼭 지켰습니다. 거의 한 시간을 지켜 보았는데도 그 순서를 정확하게 잘 지켰습니다. 아마 그것이 그들 사이에 불문율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런 그들이 마치 서울의 성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두침침한 승강장 통로 한 끝에 흰 지팡이를 짚고 꾸부정하게 서있는 그들에 의해 비로서 서울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 맹인이 어깨에 맨 낡은 비닐 가방에서 부스럭부스럭 무엇인가를 꺼내 들었습니다. 김밥이었습니다. 아마도 집에서 아내가 준비해준 것인 듯 김밥의 굵기가 일반 김밥의 두배나 되었습니다. 그는 밥알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비닐봉지 안에 김밥을 넣어 조심스럽게 감싸 쥔 채 물도 없이 꾸역꾸역 씹어 먹었습니다. 혹시 남들이 볼까 기둥에 기대어 와롭게 등을 돌린 채.

 

나는 그가 김밥을 먹는 것을 지켜 보다가 그만 울컥 눈물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그가 내게 주는 위안 때문이었다. 만일 내가 저 김밥을 먹는 맹인 이라면, 나는 목이 매어 그 사내처럼 그렇게 외롭게 김밥을 먹을 수없을 것 같았다.

 

그는 김밥을 다 먹고 자기 차례가 되자 다시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김밥을 꺼냈 던 낡은 가방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천천히 불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지팡이를 두드리며 전동차 안으로 걸어가는 그를 나는 전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랫동안 지켜 보았다.

 

그러자 그가 내게 '나의 불행이 당신에게 위안이 되느냐'고 자꾸 묻는것 같았다. 나는 '네 그렇습니다. 당신의 불행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어쩜 나보다 불행한 이들에게 오늘도 많은 빚을 지면서 갈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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