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은 아직 베트남에... 나 홀로 이취임예배를 위해 중국에 들어왔습니다.
묵상의 여정: 낯설음 회복의 여정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혹은 ‘거리두기’(distanciation)란 용어가 있다. 이 말은 러시아의 빅토르 쉬플로프스키란 사람이 처음 사용했던 말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익숙해져 있는 사물을 낯설게 하면 그 사물의 본질이 보인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문학용어다. 생각해보자. 설이나 추석 명절에 새 신발을 신고 새 옷을 입을 때 느낌은 사뭇 다르지 않던가. 발뒤축이 헐고 딱지가 생길 때까지는 신발은 아직 손님이다. 새 옷이 주는 냄새와 감촉은 여간해선 가시지 않는다. 한번 손빨래를 하여 햇볕에 짱짱하게 말린 후에야 그 싱싱하던 느낌이 수그러든다. 그러다 시간이 더 흐르면 흐를수록 그것들은 어느새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안경을..
베트남에서 입국 거부를 당한 뒤,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벌써 한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매일 통화하는 아내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절 안심시켜 주고 있지만, 가족들을 볼 수 없는 제 마음은 늘 순간순간 일어나는 조바심에 온몸의 신경들이 바늘처럼 날카롭게 일어서곤 합니다. 툭 건들기만 해도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신뢰하고 있지만, 이 통증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돌아서 피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 아닌가 봅니다. 이 통증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인내하며 가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