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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 묵상입니다.

 

[전도서 3:16-22]

16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17 내가 내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하였으며

 

파스칼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피레네 산맥의 이쪽에서는 정의인 것이 저쪽에서는 불의가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정의라는 것이 지극히 상대적인 것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이웃 나라 일본의 신사 참배는 일본인 자신들에게는 어쩌면 조상에 대한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으로인해 전쟁의 고통을 겪은 주변 국들에게는 그것이 전쟁 전범을 숭배하는 불편함으로 다가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의라는 것은 입장과 상황 그리고 관계에 따라 매우 상대적인 것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16절에서 "재판하는 곳에도 정의를 행하는 곳에도 악이있다"라고 말하면서 해 아래의 정의라는 것이 헛된 것임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전도자는 이 땅에서는 재판장에도 정의를 실현할 곳에도 악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정의를 실현 할 수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때를 소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절 "...의인과 악인을 하나님이 심판 하시리니 이는 모든 소망하는 일과 모든 행사에 때가 있음이라"

 

해 아래, 이 땅에는 온전한 정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는 하나님의 때를 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있음을 알고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심판'이란 '계산'하는 것입니다.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절제력이 가장 강력하게 발동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바로 음식을 주문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음식을 주문할 때 모든 사람들은 계산 할 때를 염두에 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지갑에 있는 돈 만큼 음식을 주문합니다. 더 좋은 걸 먹고 싶어도, 더 많은 걸 먹고 싶어도 가지고 있는 돈 만큼만 주문을 하죠. 계산하고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때, 심판을 바라보는 성도의 삶입니다.

 

심판할 때, 계산 할 때가 있음을 아는 성도는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마치 계산할 때가 오지 않을 것처럼,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의 때, 심판의 때, 계산할 그 때를 바라보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절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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