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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 묵상입니다.

 

[시편 73:1-16]

1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본 시편은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정의의 모순을 노래한 시입니다.

 

"왜 악인이 형통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공의가 진실이라면 악을 행하는 사람은 그 반응으로 징계를 받아야 하고 선을 행하는 사람은 그 보상으로 복을 받아야 하는게 아닌가? 그런게 우리의 삶의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왜 이렇게 많은가"라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불편함을 시인은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비단 시인의 고민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빳빳이 고개를 들고 다니는 권세가들을 볼 때마다, 수백억씩 공금을 횡령하고도 떵떵거리며 잘사는 부자들을 볼 때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주변에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면서도 나보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는 이웃들을 볼 때마다 우리가 느끼는 고민이기도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고통을 볼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공의와 악이 득세하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보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본 시편의 저자의 고민은 불평을 위한 고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실 이 문제의 고민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공의를 조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변호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3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이 말씀은 시인이 얼마나 이 문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시인은 16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홀로 힘겹게 노력 했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6절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시인은 하나님의 공의를 이해하고 변호하기 위해서 먼저 악인의 모습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고발하는 악인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1.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요

목걸이는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물입니다. 그래서 악인들은 자신의 신분을 자랑하고 드러내기 위해 교만을 목에 걸고 다닌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혹 악인들의 장신구를 보며 그부러워 하고 있나요? 시인은 그것이 부러해야 할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만의 덩어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 '강포'가 그들의 옷이며

옷은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바람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악인들을 강포를 그들의 옷으로 입고 있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즉 악인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강포(폭력과 부정)를 옷처럼 입고 다닌다는 말씀입니다.

 

강포, 폭력이란 무엇입니까?

 

 

3.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나며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은 눈을 통해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이 드러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그 눈이 살찜으로 솟아난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악인들의 눈이 그 속에 탐욕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솟아난다란 뜻의 히브리어 '야짜'는 매우 다양한 용법을 가지고 있는데 '나타나다', '꺼내다', '튀어나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으며

마음의 소원보다 많은 소득은 과욕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당신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의 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려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누려도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즉 많이 가지고 있지만 늘 주리고 목마른 자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마음의 소원보다 많은 재물은 악인의 풍요로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 속에서도 늘 빈곤 할 수밖에 없는 악인들의 한계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들은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고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을 주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아마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원하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연을 볼 때나 사람을 볼 때 늘 그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인의 말에는 찬양이 없음을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결국 악인들의 능욕의 말, 악한 말, 거만한 말은 하나님을 향한 조롱이라는 것입니다.

 

6.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악인들은 마치 하늘에라도 올라갔다 온 것처럼 늘 거룩을 입에 달고 자기 주장을 말하고 하지만, 그들의 혀는 땅의 것들을 탐닉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닌다고 시인은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말씀을 빙자해서 자기의 유익만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현실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고민하고 있습니까? 혹시 왜 나는 그들과 같이 되지 못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나요? 그러나 그러한 고민은 사실 악인들이 누리는 성공과 풍요에 대한 부러움일 뿐이지 진정한 고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 하지 않고 말씀으로, 그 지혜와 명철로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가 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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