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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련 안디옥교회 새벽 말씀 묵상입니다.

 

[레위기 18:19-30]

21 ... 욕되게 하지 말라

22 ... 가증한 일이니라

23 ... 문란한 일이니라

30 ...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이니라

 

'반대말'의 정의를 아십니까?

 

두 단어의 의미가 서로 반대인 경우 그 단어를 반의어라 한다. ‘낮’과 ‘밤’, ‘남자’와 ‘여자’ 등이 그 예이다. 반의어 관계는 어떤 비교 기준이 하나일 때 성립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성 하나만 다르므로 반의어가 된다. 그러나 ‘청년’은 성 이외에 나이까지 다르므로 ‘할머니’의 반의어가 될 수 없다. ‘소년’과 ‘소녀’, ‘어른’과 ‘아이’는 각각 반의 관계가 성립하는데 ‘책상’과 ‘토끼’는 반의어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반의 관계는 결국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의미 특질 중 어느 한 특질에 의해 성립함을 알 수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에서는 성만 문제되고, ‘젊은이’와 ‘늙은이’에서는 나이라는 특질만 문제되며, ‘스승’과 ‘제자’는 가르침을 베푸느냐 받느냐라는 특질만이 그 분류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다 공통되고 어느 한 가지 의미 특질만이 대립 관계를 이룰 때 반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국어 용어 사전]

 

'본디말'과 '반대말'의 차이는 이처럼 종이 한장 차이 입니다.

 

그렇다면 '예배'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이 두 가지 단어의 차이는 바로 그 대상입니다. 하나님이 대상일 때는 예배이지만 하나님 이외의 어떤 것이 대상이 될 때 그것을 우상 숭배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본장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지나칠 정도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30절) 라고 자기를 계시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방향을 이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돌려 놓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이 예배가 되느냐 우상숭배가 되느냐는 누구를 바라보고 사는 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의 사백여 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애굽을 바라보고 살았고, 그들의 신을 바라보고 살았을 것입니다. 의도했든 않했든 그들의 삶은 이미 우상숭배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제 더이상 애굽도 그들이 들어갈 가나안도 바라보지 말고 당신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상숭배자가 아닌 예배자로 살라는 말씀인 것이죠.

 

누구를 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은 전혀 새롭게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적인 부정과 타락은 대부분 우상 숭배의 의식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렇게 우상을 바라보는 삶은 하나님이 인간게 주신 아름다운 성을 악하고 음란한 것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본문은 이러한 모습을 욕되다(21절), 가증하다(22절), 문란하다(23절)고 말씀합니다.

 

'성'문제 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일상'이 모두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도 삶의 방향,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의 온갖 성공 신화 속에 웅크린 우상을 향한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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