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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움의 정체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는 것을 본적 있나요?
군무(群舞)를 추며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경이로움까지 느끼게 하곤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느끼는 ​경이로움이 단지 처음보는 신기한 광경 때문만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군무(群舞)를 추는 새들에게서 우리는 놀라운 모습을 곧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도 길을 걷다가 서로 어깨를 부딛히거나 발을 밟기 일수인데, 저 작은 미물들은 어떻게 서로 부딪히지 않고 날고 있는 것인가?

이런 생각이 새들의 군무를 보는 이에게 신비함과 경이로움을 더해 줍니다.


​왜! 부딪히지 않을까?

​서로 부딪히지 않고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은 매일 좌충우돌하는 우리에게 몇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1. 새들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날고 있습니다.

충돌은 방향​​​이 맞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거의 대부분의 부딪힘(갈등)은 바로 이 방향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 방향성은 공동체의 유연성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입니다.

공동체의 유연성이란 서로 따지고 지적하기 전에 서로의 방향을 조율할 수 있는 여유와 지혜입니다.

​2. 새들은 '흐름'을 타고 날 줄 압니다.

​추돌은 속도가 맞지 않을 때 일어납니다.​

새들의 군무(群舞)에는 서로 부딪히지 않고 여유롭게 날수 있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흐름'은 서러서로를 배려하는 속도에서 생겨나는 능력입니다.

흐름을 깨고 더 빨리, 더 높이 먼저 가려고 할 때 부딪힘은 일어납니다.

 

3. 새들은 '우두머리'을 보며 날 줄 압니다.

 

새들의 군무(群舞) 속에서 보이는 방향과 흐름은 맨 앞에서 날고 있는 우두머리 새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마치 잘 연결된 수로에 물이 막힘 없이 흘러 내려 가는 것 처럼, 우두머리 새로부터 시작되는 모든 방향과 흐름이 뒤 따르는 새들에게로 전달이 됩니다.

 

이 영향력이 막히면 방향도 흐트러지고 흐름도 깨지게 됩니다.

 

 

우리 공동체도 군무(群舞)가 가능한가?

 

가정마다 교회 마다 함께 일하다 다치고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한 몸을 이루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 안에서 오히려 서로 함께 있기를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흔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세상을 탄복시키고 놀라게 했던 경이로운 군무(群舞)는 이미 전설이 되어 사라진 것처럼 보입니다.

전설 속의 그 영광을 그리워 하며 따라해 보려고 하지만, 곧 여기 저기서 부딪히는 소리, 고함과 불평과 비명 소리만이 가득해 지고 맙니다.

 

결국, 방향과 흐름이 문제입니다.

서로의 '방향'을 조율할 유연성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흐름'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방향과 흐름을 놓치면 '힘'은 오히려 군무(群舞)를 망치는 독이 됩니다.

 

결국 이 방향과 흐름은 우두머리를 통해서 전달이 되어야 합니다.

동맥경화가 걸린듯한 우리 공동체가 그 영광스런 군무(群舞)를 다시 추기 위해서는 우두머리의 영향력이 다시 공동체 구석구석으로 흘러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우두머리는 목사도 장로도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껏 목사를 따라하다, 장로를 따라하다, 유명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을 따라하다가 실패해 왔습니다.

 

우리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으로 부터 나오는 방향과 흐름이라야만 우리 가정과 교회가 부딪힘 없이 그 영굉의 군무(群舞)를 다시 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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