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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은 묵상/새벽 큐티

사귐 [요일 1:3]

길 위에서 세상을 보다! 나무230 2018.12.14 12:04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1.

세상 안에는 많은 종류의 사귐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남녀의 사귐부터 같은 취미, 생각, 철학, 목표 등등 다양한 이유와 목적을 가진 사귐들이 있다. 


2.

그런데 세상 속 사귐의 그 다양한 동기와 목적을 가만히 살펴보면 결국은 돈(물질, 쾌락)이다. 그래서 세상의 사귐은 돈이 안되면 모이지 않고 재미가 없으면 만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교회를 정할 때도 나에게 이익이 될만한 교회나 재미있는 교회를 찾는 이들이 많다.


3.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성경은 우리 사귐의 동기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1절),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주고 있다. 요한은 그가 복음을 전하는 동기와 목적이 우리에게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3절) (선행이라도 그 중심에 예수가 없다면 사귐이 아니다.)


4. 

즉, 사귐(코이노니아)이 교회란 말이고, 교회가 사귐(코이노니아)말 말이다.



5.

뿌리 깊은 전통이나 웅장한 예식 그리고 십자가가 달린 건물이 이 교회가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 생명의 말씀(예수)이 있을 때 그것이 사귐(코이노니아)이고 거기가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6.

가족들이 모여 배불리 먹고 행복해도 그 일상의 중심에 말씀이 없다면 그 곳은 곧 더 많이 먹으려는 욕심으로 지옥이 될것이다. 그러나 한 끼 먹을꺼거리를 걱정 하더라도 그 중심에 말씀이 있을 때 그곳에 사귐(코이노니아)이 있고 그곳이 교회가 된다.  


7.

아름다운 예배당 이라도 사귐(코이노니아)이 없고 싸움이 있다면 거기는 지옥이다. 그러나 시장 바닦이라도 사귐(코이노니아)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교회이다.


8.

복음은 곧 사랑이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래서 복음은 연설이나 웅변으로 전할 수 없다. 그것은 사랑하는 삶으로 다시 말해 요한이 말하고 있는 사귐(코이노니아)으로만 전할 수 있다.



9.

예수님께서도 그 복음(사랑)을 연설이나 웅변으로 전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자. 그분의 죄인들의 식탁에 함께 하셨으며 병든자와 죄인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과 사귀셨다. 


10.

한국의 야경을 붉은 십자가 가득 채운 것을 자랑하는 분을 보았다. 그러나 그 십자가 안에 사귐(코이노니아)이 없다면 공동묘지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11.

교회가 될것인가? 무덤이 될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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